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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죽였다.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그를 모래바다의 아래로 밀어 넣었다.

머리부터 발까지 늪에 빠진 것 마냥 삼켜졌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3개월.

만나는 인간마다 내 능력을 탐내거나 몸을 탐냈다.

인간이란 원래 이런 족속들인 건지, 아니면 내가 운이 없는 건지.

당분간 마법은 쓰지 않는 쪽으로.

한숨을 푹 내쉬고, 그가 어제 말했던 <사막왕국>이란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분명 돌산 다섯을 넘으면 나온다고 했지.’

 

지친 몸을 다시금 이끌고 돌산을 올랐다.

내가 이곳에서 죽인 인간만 무려 다섯.

그 전까지 동물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는 게 나였다.

날 이렇게 만든 건 인간이다.

죽이지 않으면 분명 날 죽음으로 몰아넣을 놈들이었다.

<인간을 믿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 구르고 구른 경험의 결과였다.

 

사막의 한낮은 모든 것을 말려버릴 정도로 뜨겁고 밤은 숨이 얼어버릴 만큼 차갑다.

그런 와중 한참을 오르내리고 있으니 갑자기 눈앞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는 어지럽다.

깜빡깜빡.

시야는 곧 검은색으로 변했다.

그러다 짙은 푸른색으로 바뀌었고 다시금 검은색이 되었다.

열사병이었다.

조치를 취해보려 했지만 몸은 이미 고꾸라진 지 오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이 더위에 노출된다면 분명 말라 죽어버리겠지.

 

안 돼, 부모님도 형님들도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이 망할 운명은 불운으로부터 날 지켜줄 생각조차 안 하는구나!’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입안이 바짝 마르고 정신이 오락가락 할 무렵.

누군가 내게 물을 흘려주었다.

 

***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뜨니 낡은 침대에 덩그러니 혼자였다.

열사병에 걸렸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상태를 보니 응급처치를 한 모양이다.

방 안은 낡은 가구들이 많은 것치곤 깨끗하고 손질도 잘 되어있었다.

역시 이곳은 누군가가 사는 곳이다.

침대에서 내려가려고 하던 중, 문이 열리며 남성인지 여성인지 모를 자가 나왔다.

그는 다정한 톤으로 내게 괜찮냐 물으며 내 몸에 손을 대려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그 당시 이런저런 인간들한테 당한지라 이자 역시 믿기 힘들었다.

다정한 척, 나를 도와준 척 다가간 후 나를 이용할지도 모를 노릇이니.

이를 빠득빠득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

불안감, 혼란스러움, 당혹감.

모든 것이 섞인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긴 어려우리라.

날이 바짝 서있었던 나는 결국 그의 손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기회를 틈타 집밖으로 나가자 이게 웬걸 인간 여자, 인간 남자, 어린 인간.

다수의 인간이 집밖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으읏.”

 

수많은 시선에 겁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자, 방에 있던 그가 내 손을 잡고 집 안쪽으로 데려왔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어버린 등을 토닥여줬다.

 

혹시 사람이 두려운 거니?”

 

인간, 이중적이며 폭력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물.

지금까지 봐왔던 인간들은 세세하게는 달랐지만 심지는 하나같이 똑같았다.

욕심이 너무 많았다.

한계를 넘은 욕심은 언제나 파멸을 불러온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이자도 인간이니 분명 그럴 것이다.

눈을 또르륵 굴려 그를 자세히 보았다.

목까지 오는 검은 단발머리, 자수정색의 눈동자, 짙은 색의 피부, 체향은 맡아보니 여자였다.

키가 같아 남자인 줄 알았는데.

인간은 인어와 달리 남자 쪽이 더 큰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을 그에게 안겨 있었다.

 

이후 더럽다며 강제로 몸을 씻었고 새 옷도 받았다.

자르지 못해 어깨까지 길어진 머리카락도 다듬어 예전처럼 묶었다.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가 이곳의 역사과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주었다.

그의 이름은 나나이 칼. 사막의 모래 위에서 배를 모는 선원이라고 했다.

믿기 힘들지만 이곳은 내가 알던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소금물로 가득한 바다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모래로 가득한 모래바다만이 존재했다.

물이라곤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와 지하에서 끌어온 지하수, 식물에 고여 있는 식수 정도.

나는 왜 이런 곳에 있는 걸까.

 

그에게는 내가 저 머나먼 곳에서 왔고 중간에 사고로 인해 조난되었다 소개했다.

그리곤 하나의 진실을 거짓 중 섞어놓는 편이 더 현실감이 있기에 이곳의 직업 <바람잡이>를 이용했다.

다행이도 바람잡이가 무엇을 하는지는 잘 안다.

바람마법을 잘 사용하면 유능한 바람잡이로 생각하겠지.

그와 함께 왕국의 골목을 걸었다.

아까는 급작스러워 그를 밀쳐내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정보를 얻어내고 도망쳐 버리자.

내가 그렇게 생각하든 말든 그는 즐거워 보이는 얼굴로 여러 장소를 알려줬다.

매일같이 장을 보는 장터, 여러 인간들이 모여 떠드는 술집, 첨탑이 솟아있는 종교시설, 하얀 석조로 이루어진 거대한 왕성.

마지막으로 그가 일하는 모래항구.

사막을 가로지르며 데워진 뜨거운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항구에서의 그는 무척이나 인기가 많았다.

그 많은 선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선원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도 사는 곳은 그 허름한 집이라니, 원래 세계에서 나름 꽤 살던 사람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간은 흘러 나 역시 선원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그리 멍청이가 아닌지라 그가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는 건 그냥 나랑 녀석이 운이 없었던 걸까.

 

알 수 없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할 뿐이었다.

 

***

 

그는 나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나 역시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았다.

서로가 들춰내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만약 시작한다면 멈추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건,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태양이 사막을 비출 때 즈음 눈을 떠 두 명분의 식사를 만들곤 아침잠이 많은 그를 깨우러 간다. 새 이불 속 곤히 자는 그의 등을 두들겨 깨우면 곧바로 욕실로 보낸다.

아침 식사 때는 늘 일정을 정리하며 필요한 것을 체크한다.

사실 내가 챙기고 자시고 그는 일을 하는 데에 능숙하며 여유를 보이기까지 한다.

선상생활 경력이 무려 10년이 넘어가니 고작 1년 언저리인 내가 이렇게 챙기는 게 퍽 귀엽게 보이겠지.

무튼 그와 1년을 넘게 일하면서 내 평판은 급작스럽게 치솟았다.

이곳의 바람잡이 주술은 그쪽 세계의 마법에 비하면 한참 응용력이 부족했다.

애초에 피를 매개체로 하니 한계를 보인 것이겠지만 말이다.

덕분에 그 허름했던 집을 2층짜리 큰 집으로 바꿀 수 있었다.

물론 집주인은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몇 번이고 상의를 했음에도 전의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해 투덜거리는 건 일쑤고 자라는 집에서 안 자고 배에서 자기를 몇 번.

결국 매년 오는 사막폭풍 때도 사라져 내가 찾다가 다치고 나서야 집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오늘 일은 형님이랑 따로 다닐 예정이에요. 전에 있던 바람잡이 분이 와주신다고 하니까 잘 다녀오세요. 저는 이번에 그 알죠? 대형무역업체 <딜라인>. 거기서 이번에 바람잡이 여럿이 필요하다고 해서요.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요.”

 

이번 일은 대형무역업체 <딜라인>에서 내놓은 대물건수였다. 큰돈과 명예가 오가는 만큼 웬만해서는 놓치기 싫었다.

항구에 도착하자 뜨거운 사막바람이 이곳의 열기를 느끼게 한다.

평소보다 더 많은 인간, 사람들.

왕국에서 오가라 하는 바람잡이는 대부분 모인 것 같았다.

언제나처럼 짐이 적재되길 기다린 후, 돛을 펴고 바람을 몰아 사막의 모래를 갈랐다.

미지근한 바람, 시작이 좋다.

이번 일이 끝나면 좋아하는 비둘기구이나 먹으며 밤새 수다를 떨다 자리라.

배의 난간에 팔을 얹으며 내일을 상상했다.

 

대형무역업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무역은 성공했고 많은 짐들을 배에 실었다.

이제 왕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 전에 매번 해오듯 바다에 대한 정보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하지만 무릇 그렇듯 이곳에서의 바다는 물의 바다가 아닌 모래의 바다였고.

그 외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 다시 돌아오던 중 최악의 인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내가 이곳에 떨어졌을 때 처음으로 만났던 인간. 인신매매꾼, 그였다.

녀석은 내가 <카심>인 줄 알고 날 보자마자 손부터 날렸다.

버릇 개 못준다고 또 손버릇이 튀어나왔다.

물론 그걸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제압하자 녀석이 몸부림을 쳤다. 그러다 힘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안 건지. 입을 나불대기 시작했다.

 

크흐흐, 카심. 이게 얼마만이야. 반가워서 그랬지. 죽어가던 노예 녀석이 이렇게 번듯한 옷을 입고. 이번 주인은 너를 꽤 예뻐해 주나 본데? 많이 신분상승 했네, 그치?”

 

번들거리는 면상을 들이대며 카심을 비웃기를 한참.

 

나는 네가 타미르랑 붙어먹는 줄 알았잖아. 그 특이한 귀쟁이놈. 얼굴은 반반하면서 특이한 몸이니 분명 높으신 분한테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었는데……. 하아……, 카심. 타미르 어디 있어? 네가 알잖아. 타미르 그 새끼 내 물건 다 부셔놓고 내 부하들 다 죽이는 바람에 복구만 일 년이 넘게 걸렸어. 그 새끼 어디 있는지 알려주면 꽤 쳐줄게. 걔 몸값에서 좀 빼준다니깐. 사람 좀 써서 팔다리 잘라놓고 성벽 조져버린 놈한테 비싸게 팔아넘기면 걔가 뭐 어쩌겠어?”

 

그래, 이놈은 이런 놈이었다.

인간을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고 마치 도구로 본다.

무심코 잡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크악! 이 팔 놓고 이야기하자니깐! 내가 전에는 미안했다니깐. , 브레노! 빨리 와서 날 도와라!!”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부하인지 호위꾼인지가 저멀리서 뛰어오는 게 보였다.

더러운 몸과 더 이상 붙어 있기 불쾌했기에 녀석을 놓아줬다.

 

카심,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지. 너 역시 돈이 필요한 거지? 만약 정보를 팔고 싶다면 저쪽 돌산 위쪽으로 오라고. 자정, 그 시간이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말이야.”

 

아픈 손목을 몇 번 매만지며 돌아가는 꼬락서니란.

그날, 카심이 죽던 그날. 전부 죽은 줄 알았는데.

 

……자정이라 했나?”

 

어차피 녀석을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인어인 타미르를 아는 인간은 전부 죽어야 한다.

그게 과거의 망령이든 뭐든 간에 말이다.

 

자정이다.

막사에 인식저하 마법을 걸고 돌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녀석도 나도 결과는 하나로 직결될 것이다.

치부의 죽음.

생각대로 녀석은 무장된 부하를 끌고 나타났다.

 

크하하! 결국 너도 나도 다 같은 바깥쪽 인간이야. 이렇게 살아도 돈이면 다 된다고. 그래, 카심. 타미르는 지금 어디 있지?”

 

카심은 너와 같지 않다.

타미르 역시 너와 같지 않다.

인간은 다 너와 같지 않다.

네 추악함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마라.

 

그때 남기지 말았어야 했다. 카심을 위해서라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는 타미르에 대해 물었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변신을 풀고 반쯤 모습을 내보였다.

 

타미르? 본인을 앞에 두고 너무 나불대는 것 아닌가?”

, 타미르!!”

 

이제부터 잘못 꼬인 타래를 잘라낸다.

너희는 오늘 남지 않을 것이다.

 

***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쳐 지나간다.

이런 바람을 만난 날은 운수가 좋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당연하게도 형님이 날 반기고 있었다.

그래, 이제는 이 일상이 당연한 거겠지.

 

그는 내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나 역시 그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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