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이내에 쓴 글은 얼마 없어서 정리해서 올립니다.

전연령 파트만 잘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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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어린 신랑>에서 발췌
 

#1. 


미오리네는 기분이 좋지 않다. 원하지 않은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니까.
나이가 찼음에도 결혼하지 않고 버티고 있던 건 제 일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가문사람들은 결혼이 최고라며 미오리네에게 여러 신랑 소식을 들고 오기 일쑤였다.
한 열둘 정도를 거절했을 즈음,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일과 결혼 둘 다 진행하면 되지 않겠느냐 데릴사위를 데려오기로 했다.

미오리네는 조건을 붙였다.
첫 번째, 여러 마을을 통틀어서 가장 사냥을 잘하는 사람일 것.
두 번째, 가정에 충실한 사람일 것.
세 번째, 나보다 나이가 적을 것.
네 번째, 예의가 바르다 소문이 날 것.
다섯 번째, 내 옆에 설 정도로 반반한 얼굴일 것.

사냥을 제일 잘하는 자가 자신보다 나이가 적을 리도 없고, 가정일에 충실한 일도 없다. 자신만만한 제타크 가문의 첫째처럼 재수도 예의도 없겠지.

 

 

한숨을 내쉬며 예식에 쓸 의복을 몸에 걸쳤다.

“설마 이 조건에 맞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미오리네의 조건에 맞는 자.
붉은 머리 가문의 막내라고 했던가? 나이는 한두 살 정도로 어리겠지. 그 정도도 충분히 어린 편이다. 스물의 미오리네는 연하의 데릴사위를 구슬릴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창문 너머로 붉은 머리칼을 가진 사람 여럿이 보였다. 그 중 제 또래로 보이는 건장한 여자가 하나. 시종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보통 시종으로 저렇게 어린아이를 데리고 오던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오늘 밤에나 볼 얼굴이다. 그때까지는 신랑이나 신부 둘 다 천에 가려져 모습을 볼 수도 없으니까.

결혼식을 무사히 마치고 밤이 되었다. 신부가 있는 방에 들어가 걸친 천을 벗기는 게 결혼의 마지막. 원래라면 신부인 내가 천을 쓰고 있어야 했지만 데릴사위 쪽이 천을 뒤집어쓰고 기다리기로 했다. 워낙 내가 지랄을 쳐 해댔으니 이렇게 해둔 거겠지.

몇 개의 촛불로 밝힌 신혼방으로 미오리네는 들어갔다. 하나의 이불 위에 화려한 천에 싸인 신랑이 보인다.
오늘 아침의 짧은 붉은 머리의 여성. 분명 그 사람이겠지. 허우대도 그 정도면 합격이다. 미오리네는 단번에 천을 걷어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붉은 머리는 맞지만 짧은 머리가 아닌 그의 어린 시종이 얼굴을 드러냈다.
미오리네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바람을 맞히다니...!”

 망할!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천을 집어 던지고 뛰쳐나가려 하자 아이가 제 손목을 붙잡았다.

 “시, 신부님! 바람 안 맞혔어요! 제가 신랑이에요!”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는 그 나이대에 맞게 어리고 연약하게 느껴졌다. 이런 아이가 어떻게 제가 건 조건에 맞는 신랑이란 말인가?

 “...네 언니 대신 말이야?”
“네...? 언네는 여기서 왜?”

 어리둥절한 얼굴. 정말이지 바보 같은 얼빵한 얼굴이다.

 “내가 건 조건, 그건 너 같은 어린아이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가장 사냥은 잘하면서 가정에 충실하고 예의바르고 반반한 연하. 자기 또래여서 말도 안 되는 데 이런 조그만 아이가 될 수 있을 리가.

 “저, 저 맞아요! 미오리네 씨의 신랑 말이에요! 제가 틀림이 없어요!”

 데릴사위인 붉은 머리 꼬마는 한 치의 거짓 없는 눈빛을 보내왔다. 도대체 무슨 일인거야?
미오리네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고 중얼댔다.

“이게 도대체...”

 

 

 

<엄마의 자리>에서 발췌

 

#1.

 

세상이란 선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의 망할 아버지 렘블랑은 사람을 소모품으로 보는 인간이었다. 많은 자들을 전장으로 몰고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았다. 그 탓에 많은 자들에게 원한을 샀고. 결국 이 사단이 나버렸다.

 

링거줄이 강제로 빠진 탓에 소매가 붉게 물들었다. 배려 없는 손속에 이리 매달렸다 저리 매달렸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다 이내 어두컴컴한 곳으로 몸을 우겨넣어졌다. 배기음이 들린다. 트렁크임이 틀림없다.

 

눈과 입, 사지 모두 온전치 못했다. 얼마나 단단하게 묶었는지 피가 통하지 않아 저리고 얼얼했다. 이번에야말로 죽는 걸까? 이미 수차례 납치당해 인질로 넘겨지길 여럿. 이제는 진저리가 났다. 그런다고 망할 아버지가 꿈쩍이라도 할까.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엄마가 죽었을 때도 찾아오지도 않은 비정한 사람. 분명 이번에도 똑같을 거다.

 

끼이익! 덜컹-!

 

갑작스레 공간이 흔들렸다. 뭐라도 걸린 것일까? 차체가 이리저리 세게 진동하는 바람에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얻어맞았다. 부러지고 부어오르는 통증에도 비명 하나 지르지 못했다.

 

너무 아파. 누가 좀 도와줘. 잔뜩 움츠린 몸을 바르작거리며 도움을 청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숨이 막힌다. 춥다. 무섭다. 살고 싶어. 이런 끝은 싫어. 길지도 않던 삶이었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말하던 주마등은 보이지도 않았다. 무서울 기세로 졸음이 몰려왔다.

미오리네는 생각했다.

 

누구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

 

머나먼 꿈속에서 움켜진 것은 엄마의 손이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흙투성이였지만 햇빛을 머금은 것같이 따스한 손길이었다. 그 손에 이끌려 붉은 과실이 가득한 숲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결실이라며 잘 익은 토마토를 입에 들려주었다. 노란 과즙이 톡톡 튀며 혀를 아리게 만들었다. 이런 맛이었던가? 고개를 갸웃거릴 즈음 불 꺼진 병원의 복도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귓가에 울림이 들려왔다. 어떤 원리인지 모르겠어. 하지만 살아있어. 숨을 쉬고 가끔 중얼대기도 해. 내보내도록 해. 에리크트, 그러기엔 너무 변이되었어. 밖으로 돌려보내면 금세 죽을 거야. 그게 네 일이야, -슬레타.

 

변이되었다는 게 무슨 이야기일까. 몸을 비틀어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하자, 두 비슷한 목소리는 끊어버린 전화처럼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나. 잠결에 잠꼬대를 하듯 몸에 힘을 빼고 숨을 일정하게 내뱉었다.

 

일어났나봐.”

나 먼저 돌아갈게. 다음 계절까진 해결해둬. 안 그러면 네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바닥을 끄는 소리가 몇 번 들린 후, 목소리는 사라졌다.

대화로 봐선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불쾌한 모양이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저 끌려왔을 뿐인데. 긴장감에 주먹을 쥐자, 다른 목소리가 다가와 얼굴을 살짝 움켜쥐었다. 우악스럽게 크고 단단한 손바닥이었는데 군데군데 빳빳한 털이 느껴졌다. 서투른 손길이지만 악의가 있어보이진 않았다.

 

이정도 크기면 얼마나 자란 거지? 봤던 것 중 가장 작아.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걸까?”

 

서투른 손길은 얼굴에서 끝나지 않고 등을 지나 배, 엉덩이, 다리까지 이어졌다.

 

눈이 완전히 망가졌네. 고칠 수 있을까? 그나저나 온몸에 이 상처는.”

 

상처투성이인지라 만지기만 해도 따끔거려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픔에 흐느끼자, 그 사람은 당황한 듯 미안하다며 몸을 내려놓았다.

 

, 구야.”

 

푸석한 목소리로 불러보았으나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천이 스치는 소리만 들릴 뿐. 불안해져 인기척이 들리는 곳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손에 잡힌 것은 두툼한 털이었다.

놓치면 안 된다는 불안감에 품에 가득 털을 껴안았다. 겉은 빳빳한데 속의 털은 부들거렸다. 덜덜 떨리는 작은 손으로 털을 파헤치곤 온기가 남아있는 속털에 얼굴을 부벼댔다.

 

으음, 역시 --이랑은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어렵네.”

 

분명히 듣고 있는데 무슨 소릴하는 걸까? 내 말이 들리지 않냐며 물었지만 자꾸만 대화의 핀트가 엇나갔다. 털을 꽉 붙들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그가 저를 들어 올리곤 품에 안았다.

 

자꾸만 칭얼대는 게 참 어리광쟁이네. , 힘을 좀 풀자. 그렇게 꽉 쥐면 상처가 덧나.”

 

상처가 없는 부분을 토닥이다 쓸어내리곤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끼익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래된 집일까 생각하고 있으니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내가 일이 있거든. 그러니 계속 붙어있을 수 없어. 그렇지만 이대로 바깥으로 내보내면 죽을지도 몰라.”

……!”

 

죽는다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죽음은 싫었다. 죽음은 차갑고 쓸쓸하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 그런 몸이 되긴 싫었다. 끊임없이 살고자 했는데 이렇게 죽어버린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의미가 없지 않은가. 너무나도 억울했다. 천으로 가려진 눈꺼풀 아래로 자꾸만 눈물이 새어나올 것 같았다. 참아야했다. 렘블랑의 이름은 약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미오리네는 버석거리는 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오리네가 그러거나 말거나 발걸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날 어디로 데려가는걸까? 생각하던 찰나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따스한 햇살이 몸에 닿았다. 감은 눈으로도 느껴지는 빛은 밝은 주홍을 머금었다.

화약 냄새도 피 냄새도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는다. 오히려 푸릇한 풀내음이 가득했다. 멍하게 있으니 그가 축축해진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렇게 울면 눈가가 짓무르는데말야. 아가야, 난 널 버리지 않아. 이곳이 너를 받아들인 이상 돌려보낼 이유는 없거든.”

 

미오리네는 그 무엇도 알진 못하지만 그가 저를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지금까지의 자신이라면 내리지 않을 판단이었다. 처음 만난 수상한 사람을 이리 쉽게 믿어버리다니. 하지만 미오리네는 그를 믿기로 했다.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도피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간신히 얻은 따스함을 뺏기기 싫었던 어린아이의 발버둥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었다.

 

***

 

저를 구해준 그는 어딘가 어설픈 사람이었다. 처음 믿음직스럽다 생각했던 부분도 어떨 때는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이 굴었다. 상식과는 동떨어졌다 해야 할까. 그런 문제들이 자꾸만 튀어 올라 미오리네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중략)

 

아이가 있다는 것일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린아이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이와 떨어져 있든지, 잃은 것인지 둘 중 하나였다. 미오리네는 문득 그가 저에게 이런 애정을 보이는 것이 이해됐다. 나를 제 아이로 투영하는 것이다.

 

분명 저를 버리지 않는다 했다. 렘블랑이라는 이름을 숨긴다면 계속 여기서 지낼 수 있을까? 망할 아버지의 눈에 들지 않고, 납치범의 눈에 닿지 않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붕대 아래 상처입어 보이지 않는 제 두 눈을 조심스레 건드렸다.

 

눈은 예부터 사람의 첫인상을 정하는 중요한 부분이라 했지.’

 

그가 날 비쳐보는 만큼, 나도 그를 이용해본다면 어떨까. 말이 통하지 않는 걸 보면 외국인이겠지? 어째서 이쪽만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는 잡으라고 있는 것. 미오리네는 그 기회는 놓칠 리 없었다.

 

 

#2.

 

슬레타는 아이가 걱정스러웠다. 아이는 너무나도 작고 여렸다. 어떻게 키운 것인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말라있었다. 그런 아이에게 사고라니. 온몸에 가득한 상처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있다. 그런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낸다니 죽으라고 내던지는 거나 다름없다. 이미 이곳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몸의 변이가 시작됐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을 배척하기 마련이다. 어차피 죽을 아이, 내가 가지면 어떠한가. 아무도 이해 못해. 에리크트도 동족들도.

 

너 어쩌려고 그래. 인간을 받아들일 수 없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에리크트, 아직 어린 개체야. 충분히 보살핀다면 동족으로 자랄 수 있어.”

인간은 인간일 뿐이야.”

잘 봐봐! 이정도로 동화가 잘 된 인간은 본 적 없어. 어쩌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혹시 동족들 때문이야? 그런 녀석들 신경 쓰지 말라했잖아!”

 

에리크트가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그의 얼굴은 슬픔과 분노가 섞여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신경을 어떻게 안 쓸 수가 있어. 그들이 너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을. 어중간한 반푼이로 태어난 탓에 운명조차 갖지 못한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에리크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번만큼은 질 수 없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알잖아, 파수꾼인 거 스스로 원한 게 아니라는 걸. 그러니까 한 번만 넘어가줘.”

슬레타.”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쌍둥이 언니를 바라봤다. 난 언니가 부러웠다. 어중간한 나와는 달리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니까. 운명을 가지면 그와 연결된 파트너를 만난다. 동족들 중 유일하게 짝이 없는 건 나뿐이었다. 그렇기에 파수꾼이 되었다. 평생을 파트너 없이 지내는 파수꾼. 그들은 어중간한 나를 이용해 집단을 유지했다.

 

세계의 틈엔 주기적으로 이물질이 떨어지고, 파수꾼인 나는 그것들을 밖으로 밀어낸다. 그 하나만 유지한다면 공동체에 끼어 지낼 수 있다. 강압적이진 않았지만 그렇다해서 상냥한 것도 아닌, 그저 네 길은 하나뿐이야제시할 뿐. 그렇게 시작된 생활은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에리크트를 제외한 다른 동족들은 찾아오지 않는 이곳에서 오직 임무만을 위해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그 어린아이를 주워온 게?’

 

인간이 만든 물건이 대다수지만 가끔씩 인간 그자체가 떨어지기도 했다. 아이와 만난 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 인간이 만든 물건이 떨어지고, 그다음은 인간. 죽은 인간이면 밖으로 내보낸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도 멀쩡하게 형태를 유지한다면 내보낸다. 이미 세계의 영향을 받아 형태가 무너졌다면 죽이고 불태워버린다. 아이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세계의 영향을 받았지만 형체를 유지했다. 보통은 곤죽이 되어 주변을 오염시키는데 말이다.

 

벌어진 철덩이의 입에 반쯤 걸쳐져 있는 아이는 몸에 기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주홍빛을 띤 갈라진 문양. 몸 곳곳 길게 그려진 문양은 언뜻 보면 연결된 그림처럼 보였다. 처음 보는 현상에 이끌려 손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순식간에 문양은 빛을 잃었다. 이런 일은 문헌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것도 변이의 일종일까? 그렇다는 건 밖으로 내보내는 동시에 변이의 폭주로 죽을 테지.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지는 걸 손으로 막았다. 임무 중 감정을 드러내는 건 파수꾼답지 못했다. 주변에 남아있는 것이 또 없는지 확인하곤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상처 가득한 몸을 닦아내고 치료했다. 아깝게도 눈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 보였다. 긴 천으로 덧나지 않도록 가렸다. 이렇게 어린 인간이라니, 막 태어난 동족보다도 작고 가벼웠다. 평소처럼 힘을 주면 겨우 얻은 아이를 제 손으로 망가뜨릴지도 모른다. 집안에 돌아다니던 <인간의 생태> 책을 꺼냈다. 파수꾼에게 필요하다며 에리크트가 구해다 준 서적이었다.

 

아이 파트아이가 있는 부분이.”

 

(중략)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미오리네는 경악했다. 무엇이 그런가 하면 슬레타와의 생활이 모조리 그랬다. 몇 번을 말해도 알아듣기는커녕 헤실거리기만 했다.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헤실거리는지 아냐고? 그야 목소리가 바보 같았으니까

 

슬레타가 인간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인간과는 달리 얼굴은 온통 털북숭이였으며 팔은 저보다 많을 때도 있었고 같을 때도 있었다. 혀는 저를 두 번 감고도 남을 정도로 길어 처음에는 놀랄 정도. 제 짧은 식견으론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유추하기 어려웠다. 몸이 다르니 상식도 다르기 마련. 슬레타의 방식이 싫다면 제 스스로 행동해야했다.

 

보이지 않고 대화도 통하지 않으니 말의 높낮이와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요청했다. 손재간으로 어찌저찌 원하는 것을 보여주자, 슬레타는 벌써 이런 것도 할 줄 아냐며 천재 아기라 칭했다. 도대체 얼마나 어리게 보는 걸까 기가 찼다.

 

오늘도 슬레타에게 안겨 현관 밖으로 나섰다. 따뜻한 온기와 여전히 짙푸른 풀내음이 이곳이 도심에서 떨어진 곳이란 걸 알려주었다. 하긴 슬레타처럼 특이한 사람(일단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이 도시에서 살았다간 난리가 났겠지. 적어도 평범한 생활은 무리야. 그나저나 여긴 도대체 어딘 걸까. 날 납치한 녀석들은? 슬레타가 다 무찔러준 걸까?

 

나오지 않을 답을 고민하던 미오리네는 제 손보다 몇 배나 큰 슬레타의 손가락을 꽉 붙잡았다. 인상을 팍 쓰고 있으려니 슬레타가 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꾹 누르며 웃었다.

 

인상 쓰면 못 써. 자자, 기분 풀자. 혼자서는 심심하지? 바빠서 미안해. 내일은 내가 친구가 될 이웃들을 만나게 해줄게. 동족은 아니지만 다들 유들하고 작아서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분명 너도 좋아할 거야.”

 

그게 뭐야, 만지면 좋아할 이웃이라니. 입을 삐쭉 내밀고 말했지만 여전히 슬레타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 슬레타에게 약간, 아주 약간 짜증이 났다. 다음날 슬레타가 데려온 그 말랑말랑하고 납작한 것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납작하고 털이 고른 작은 생물은 찍찍 소리를 내며 주변에 머물렀다. 슬레타 말로는 여러 마리가 모여서 사는 날다람쥐 같은 생물이라는데 오늘은 먹을 것을 여럿 주고 데려왔다나. 그들은 종종 내 곁에서 온기를 제공했다. 덕분에 외롭지 않을뿐더러 그들이 우리의 관계를 토론할 때마다 쓸모 있는 정보를 주워들을 수 있었다.

 

파수꾼의 새끼. 파수꾼이랑 비슷한 냄새가 나.”

바보야! 파수꾼이 낳았잖아!”

모습 전혀 다른데?”

파수꾼, 원래도 여러 모습으로 바뀌잖아. 팔도 다리도 마음대로 늘릴 수 있고. 어쩌면 파수꾼이 어릴 땐 저런 모습일 수도 있어.”

하아?”

 

여러 모습으로 바뀐다니 무슨 뜻이지? 황당한 이야기에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 파수꾼이 잘 보살피랬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됐다고 했잖아. 성체인 우리가 돌봐야해.”

우는 거야? 새끼! 새끼 아파?”

아냐! 그 정도까지 어리지 않아! 안 아프다고!”

 

안간힘으로 아프지 않다는 걸 어필했지만 온몸에 넓적한 솜털들이 다닥다닥 붙는 건 막지 못했다. 넓적한 털들에 파묻힌 꼴이란. 나가지 못하고 버둥대고 있으니 일을 끝내고 돌아온 슬레타에게 구출되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슬레타가 묻자.

 

파수꾼, 우리 제대로 새끼 돌봤어. 우는 것도 달랬다고.”

울었어?”

 

큰 손가락이 안대 위를 천천히 만지다 둥글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눈물이 난 흔적은 없다. 애초에 울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크게 울었다고.”

파수꾼 냄새가 옅어져서 그랬을까? 보통 부모랑 떨어지면 낯을 가리잖아. 파수꾼 새끼도 어리니까 그럴지도 몰라.”

배가 고픈 걸 수도.”

파수꾼은 평소에 뭘 먹여? 우리는 난황을 먹는데. 파수꾼 새끼는 난황을 제대로 못 먹더라고.”

 

그들이 준 손만 한 크기의 동그란 무언가는 떫은맛에 뭉그러지는 감촉이었다. 기분이 이상해 한입만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았다.

 

(중략)

 

집으로 곧장 돌아온 슬레타는 제 안에 품은 미오리네를 천천히 꺼내 올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작은 몸 곳곳 주홍빛 문양들이 옅게 빛을 내고 있었다.

 

처음보다 더 빛을 내고 있어. 건강에 문제되는 건 아니겠지? 아냐, 그랬으면 처음 올 때 그렇게 됐었어야지.”

 

걱정스런 눈으로 아이의 문양을 훑었다. 반푼이로 태어난 나처럼 이질적인 몸을 가진 아이. 더 이상 동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차라리 이대로 더 바뀌어서 나와 함께 영원히.

 

그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야지.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도록 내가 잘 보살펴줄 테니까.”

 

슬레타는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우리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뜻. 없는 운명이라면 스스로 만들어 나눠주고 싶었다.

 

미오.”

 

인간세계에선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지 모르겠지만, 슬레타는 아이에게 미오라는 이름을 얹어주었다. 큰 뜻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처음 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작은 소동물이 우는 것처럼 귀여운 단어.

 

네 이름은 이제 미오야. 미오.”

 

아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미오라고 단조롭지만 확실하게 말했다. 그 말에 아이는 고개를 위로 살짝 들어올리나 싶더니 미오라는 단어를 따라했다.

 

, 미오. 미오!”

미오리네.”

으응?”

미오리네.”

 

미오리네, 좋은 울림. 아이의 입에서 나온 똑바른 단어. 슬레타가 놀라 멍하니 있자, 아이는 미오리네라는 말을 반복하며 가슴의 털을 쥐어뜯었다. 혹시 미오만으론 부족했던 걸까?

 

, 미오리네?!”

“-----!!”

미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분명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제대로 된 언어로 들리지 않았다. 아이는 곧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역설적이게도 오래 산 쪽은 이쪽인데 아이는 제 말을 알아듣고, 저는 오히려 알아듣지 못했다. 어째서 미오리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걸까. 그 알 수 없는 문양 때문일까. 고민을 해봐도 선례가 없었다. 그렇다면 제가 더 노력할 뿐이다.

 

***

 

그러니까, 이게 산책이고, 이게 밥. 그리고 이게.”

 

, 미오리네의 작은 주먹이 슬레타의 몸에 꽂혔다. 아무래도 이게 아니었나보다. 미오리네와 소통하기 위해 슬레타는 미오리네의 몸으로 말하는 법을 익혔다.

 

처음은 간단한 단어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긴 문장까지 터득했다. 점점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슬레타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그건 미오리네도 마찬가지였다.

 

슬레타와 함께하는 지금이 겪었던 삶보다 훨씬 애정이 깊었다. 감시하는 사람도 아부하는 사람도 없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이유 없는 사랑만이 존재했다.

 

슬레타는 내 엄마가 되고 싶은 거야?”

 

알아듣지도 못하는 슬레타 앞에서 일부러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는다. 상관없어. 애초에 답을 들으려 했던 것도 아니니까. 미오리네는 대수롭지 않듯 입꼬리를 올리곤 얼버무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역시 아까 했던 말이 자꾸만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슬레타에게 무얼 바라는 걸까? 나에게는 이미 돌아가신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자리는 만석이나 다름없는 거다. 그럼에도 자꾸 술렁거린다. 슬레타가 내 가족이 되어줬음 좋겠어. 그렇지만 엄마의 자리까지 주고 싶진 않아. 미오리네에게 엄마는 노틀렛 렘블랑 하나였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나 슬레타의 침대로 다가갔다. 빗질을 해 부드러워진 털이 손가에 느껴졌다. 그대로 몸을 던져 안겼다. 엄마와는 다른 몸. 그렇지만 엄마처럼 따뜻하고 안심되는 몸. 미오리네는 오랜만에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졌다.

 

 

 

#3.

 

계절은 여전히 가을. 내가 이곳에 온 지도 꽤 지나 키가 네 뼘만큼 커졌지만 계절은 고작 하나가 지나갔다. 아무래도 이곳의 계절은 년 단위로 지나가는 모양이다.

 

여름동안 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터득했다. 슬레타가 말한 몸 전체에 퍼진 문양. 이것에 집중하면 주변의 환경이 흐릿한 형태로나마 머릿속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자주 부딪히고 넘어졌지만 지금에 와선 도움 없이도 집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슬레타는 조금 아쉬워하는 눈치지만 언제까지고 의존할 순 없는 노릇이다.

 

좋아, 여기는 됐고.”

 

마른 땅에 물을 주곤 자란 작물을 바라보았다. 가끔씩 인간세계에서 떨어진 씨앗으로 키운 밭이다. 젖 이외에 먹을 수 있는 게 없던 미오리네에게 굴러온 호재. 토마토를 비롯해 호박, 감자 등의 여러 채소를 키울 수 있었다. 햇빛과 물. 그리고 이상한 난황덩어리만으로 살아가는 슬레타들은 모르겠지만 인간은 주기적으로 고기나 채소, 과일을 먹어야했다.

 

여전히 성장이 빠르네. 슬레타가 말한 대로 이 이상한 힘과 연결돼 있는 걸까?”

 

미오리네의 곁에 있으면 식물의 성장속도가 눈에 띌 정도로 빨라진다. 때문에 지금 시기에 열매를 맺지 않는 작물들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중략)

 

한동안은 무척 바쁘게 흘러갔다. 겨울을 대비해 집의 단열을 신경 쓰고, 에리크트에게서 보급품을 채워 넣고 수확한 야채들을 말려 보관해 놨다.

 

짧은 며칠 사이에 이곳의 온도는 빠르게 떨어졌다. 털뭉치 이웃들도 모두 동면에 들고 슬레타 역시 겨울털을 불리곤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모두가 잠든 한낮에 혼자 나와 말라버린 세상을 걸어 다녔다. 바닥에는 부서진 낙엽들이 잔뜩이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퍼석퍼석 소리가 났다. 내가 가진 힘으로도 겨울은 소용이 없는지 푸른 싹 하나 피워내지 못했다.

 

자고 있어.”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는 슬레타를 꼬옥 껴안았다. 인간의 시간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이곳의 겨울. 애초에 인간들이 전쟁을 하기에 이렇게 된 거다. 이래서 인간은 꺼려진다. 아버지는 물론 제 곁에 있던 자들 대부분 원하는 것이 있으면 폭력을 사용했으니까. 그들과 동족이라고 불리고 싶지 않았다.

 

제 스스로를 만져봤다. 이젠 제법 티가 나는 귀와 꼬리. 사라지지 않는다던 주홍빛 문양. 어린아이가 아닌 성장한 몸. 인간이라고 부르기엔 멀리 왔지만 그렇다 해서 완전히 인간이 아닌 건 아니다. 변했다면 이미 동면에 들어갔겠지. 이럴 거면 빨리 변했으면. 에리크트의 말대로 시간 날 때마다 서로 붙어있는데 어째서 아직도 인걸까.

 

하아.”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민하다 보니 식사를 거른 것도 잊고 있었다.

 

(중략)

 

뭐가 그리 성급한지 말이 빨라졌다.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기 전에 입을 막았다.

 

아냐 됐어. 신경 쓰지 마. 괜한 말 했어. 난 슬레타랑 함께하기 위해 여기 있는 거니까.”

미오리네, 난 언제나 진심이야. 잘못된 게 있으면 고칠게.”

 

알고 있어. 슬레타가 진심인걸. 인간의 관점에 사로잡혀 있는 내가 나빠.

 

따뜻하게 해 줘. 추워.”

 

부드러운 가슴털에 안긴 그날, 첫눈이 내렸다. 잠시나마 깼던 슬레타도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다. 싸늘한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온 세상이 희게 변했을 때 다시금 혼자임을 느꼈다.

 

***

 

스물넷, 스물다섯후우, 감자만 스물다섯 포대인가?”

 

손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몸이 변한 뒤로 이런 포대 같은 것을 쉽게 옮기게 되었다.

 

겨울이 온 지도 486. 인간의 날짜로 따지면 1년 하고도 4개월. 긴 겨울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얼은 물은 보급품으로 온 발열석으로 녹여 사용하고 창문은 환기용 하나 빼고는 전부 막아 단열에 신경을 썼다.

 

추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열의 공급이 최우선. 집안의 활동범위를 줄였기에 요즘은 슬레타가 자고 있는 아랫방에서 함께 잤다. 발열석으로 모퉁이를 두르고 있기에 이곳은 다른 곳보다 따뜻했다.

 

위쪽은 문제없었고 오늘은 오른쪽을 가봐야겠네.”

 

슬레타가 하던 파수꾼 일을 이제는 제가 하고 있다. 가끔씩 인간세계에서 물자가 떨어지는 일이 있기에 그걸 주으러 다녔다. 슬레타는 조난당한 산 것들을 조심하라고 했지만 다행히도 지금까지 본 적은 없었다.

 

나가기 전, 두꺼운 옷을 걸치고 모자를 썼다. 길어진 귀와 꼬리가 접히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번엔 그대로 나갔다가 귀가 얼어 한동안 고생했다.

 

그럼 잘 다녀올게, 슬레타.”

…….”

 

돌아오지 않을 말을 기다리다 이내 길을 나선다. 시력이 없어도 문제없다. 오히려 이런 환경에서는 시력보다는 다른 힘에 의존하는 게 나았다. 청력이나 후각. 그리고 이능. 뽀득거리는 눈밭을 헤치며 나아간다.

 

날카로운 바람을 타고 낯선 냄새가 들어왔다. 이 냄새는 인간일 적 맡아본 적 있는 냄새. 인간이다. 그것도 화약냄새에 찌든 인간 남자. 눈 쌓인 언덕에 홀로 쓰러져 있었다. 주변에 같이 떨어져 있는 물건들을 수습했다. 킁킁, 코를 대보니 마른 식량이다. 오랜만에 다른 식량이라니 기뻤다. 그대로 짐을 들고 가려던 그때.

 

으으.”

 

뒤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살아있는 건가? 바람소리를 잘못 들은 게 아닐까? 몸을 숙이곤 땅에 귀를 기울였다. 작지만 심음이 들린다. 아직 살아있다. 어쩌지?

 

미오리네는 인간을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아직 배우지 못했다. 그렇다고 죽는 걸 방치하기엔 양심이 찔렸다. 이곳에 두면 분명 동사하겠지.

 

하아, 내 앞에서 누가 죽는 건 싫은데.”

 

고민 끝에 결국 그를 데려가기로 했다. 마침 예비용으로 만든 창고가 있으니 그곳에 욱여넣기로 했다. 기력이 있다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을 것이다. 최선을 다한 일에 후회는 없다.

 

발열석을 두고 그를 눕혔다. 가진 짐을 뒤져보니 총과 알 수 없는 기기들이 나왔다. 이런 세세한 물건은 잘 보이지 않아 사용할 수 없고. 총은이곳엔 필요 없는 물건이니 적당한 곳에 묻어뒀다.

 

민폐거든, 당신.”

 

운이 좋으면 살겠지 생각하며 방치한 남자는 온도만 맞춰주니 식물처럼 되살아났다. 가뜩이나 식량도 부족한데 입만 늘어서는 쓸데없는 말까지 나불거린다.

 

이곳은 어디냐느니, 조용한 곳이 좋다느니, 언재까지 눈이 내리냐느니, 집안에서도 싸매고 있냐느니 등등 말이다. 단점투성이지만 장점도 있었다. 인간세계의 현 동향 말이다.

 

전쟁이 벌어진 지는 5년째. 대강국에서 시작된 전쟁은 연합이 되어 세계로 번진 모양이었다. 주축국에는 미오리네의 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쩌면 제 아버지의 짓일지 모른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딸인 내가 납치를 당해 실종됐으니 그걸 빌미 삼아 전쟁을 만들었겠지. 전쟁은 무기를 파는 사람에게 돈을 가져다주고 권력을 쥐어준다.

 

.”

 

기분이 나빠졌다. 대충 얼버무리고 적당히 답해주었다. 남자는 살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고마워했다.

 

이 창고 반경으로 나가지 마.”

 

오랜만에 생긴 대화상대지만 남자를 가까이 두긴 껄끄러웠다. 내게는 슬레타가 있다. 슬레타와 나와의 공간까지 내줄 생각은 없다.

 

겨울에 돌아다니면 곰에게 뜯어 먹힌다느니 대충 겁을 줬다. 하지만 그가 있는 시간이 2주가 넘어가면서 거짓으로 붙들어둘 수 없게 되었다. 활동반경이 넓어졌고 이윽고 집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좋은 집에 사시면서 왜 저는 그 좁은 창고에 두고 가셨을까.”

신혼집에 외간남자를 들이는 법은 없으니까.”

 

빈정거리는 말에 똑같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답했다.

 

결혼하셨어요?”

그래, 그이는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하니 집 근처로 올 생각은 그만두는 게 좋아. 만난다면 그대로 벗겨서 내동댕이칠 거니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슬레타가 내동댕이치기 전, 내가 먼저 내동댕이치겠지.

 

그나저나 요즘 몸이 간지럽더라고요. 동상이라 그런가?”

 

그를 흘긋 보았다. 흐릿한 팔다리에 검은 무언가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건 본 적 없다. 불길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거 언제부터 그랬어.”

 

팔을 가리키자 그는 몇 번 몸을 긁적이더니 멋쩍게 웃었다.

 

오늘 아침부터요. 가렵기는 한데 아프지는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제대로 덮고 자. 괜히 신경 쓰이니까.”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신경 쓰일 짓을 한다.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루가 가면 갈수록 내부의 검은 것들이 요동을 쳤다. 처음에는 코피, 그다음에는 발작, 그 다음에는 피가 섞인 구토. 바닥이 토혈로 물들고 남자의 형태가 무너진다. 몸속의 검정이 몸을 뚫고 나온다. 무섭다.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된 거지?

 

크억! !!”

 

미오리네의 문양이 빛을 냈다. 불길하게 빛나는 어두운 푸른빛이다. -! 소리와 함께 작게 지어둔 창고가 날아갔다. 통나무가 이리저리 휘날려 주변의 것들을 찢어 갈겼다.

 

도망가야 해. 머릿속엔 온통 슬레타 뿐이었다. 죽으면 안 돼. 죽으면 슬레타가 슬퍼할 거야. 죽으면 슬레타가 혼자 남아!!

 

옷 밖으로 꼬리를 꺼내 날아오는 부산물들을 쳐냈다. 무늬 있는 두 개의 흰 꼬리가 불안한 듯 양옆으로 흔들린다.

 

!”

 

내 힘으로 저걸 무찌를 수 있을까? 아니, 무리다. 보기만 해도 느낄 수 있다. 저것에 가까이 가면 죽을 수 있다는 걸. 무슨 수를 쓰든 저걸 내보내던가 슬레타를 잠에서 깨워야 했다.

 

, ! 녀석이 가져온 총이라면!”

 

숨겨뒀던 총이라면 저것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미오리네는 눈 속을 파헤쳐 숨겨둔 긴 나무상자를 꺼냈다. 꽁꽁 언 총엔 다행히도 총알이 여덟 발 있었다.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장전을 했다. 눈 속에 오래 있던 터라 제대로 격발 할진 미지수지만 시도는 해봐야 한다. 어렸을 적 제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기억을 되살렸다. 그때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지금에서야 도움이 되다니 웃기지도 않을 일이다.

 

타탕-!

 

큰 탄음소리, 곧이어 괴이의 비명이 들린다. 흐릿한 연기에 구멍이 난다. 빠르게 연이어 총을 쐈다. 이번에야말로 해치우길 바랐지만 그 바람은 철걱 소리와 함께 무너졌다.

 

걸렸어!”

 

탄피가 걸린 총은 둔기나 마찬가지. 급하게 탄피를 빼내려고 했지만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손아귀에 꽉 쥐고 둔기로라도 쓰자. 생각한 그때, 큰 충격이 미오리네를 덮쳤다.

 

무엇이 공격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땅에 몇 번이고 처박혔다. 귀에서는 이명이 들리고 코에서는 피냄새가 난다. 처음 이곳에 떨어졌을 때처럼 온몸이 아팠다. 차가운 바람이 뼛속 깊이 파고들었다. 왼쪽 팔이 움직이지 않는다. 몸이 식어간다.

 

슬레타아.”

 

짝의 이름을 겨우 불렀다.

그날처럼 나를 구해줘, 슬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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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 따웅 PL KEPY
 
똑, 똑.
 
액체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소리.
 
시큰한 소독약 냄새와 시뜻하고 미적지근한 공기.
 
욱신거리는 팔뚝과 자꾸만 명멸하며 빛무리 지는 시야.
 
-
 
눈을 뜬 당신의 시야를 채운 것은 낯설고 흰 천장입니다.
 
허리 아래가 편안하고 또 푹신한 느낌이 드는 것을 보아 침대 위인 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습니다.
 
안개 낀 것마냥 부옇고 흐리멍텅한 기억이 뇌리를 지배합니다. 여기…… 병원인가요?
 
몸은 아프지 않습니다.
 
링거 꽂힌 팔을 제외하곤 어디 한 군데 불편한 곳도 없고, 오히려 인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컨디션이 좋습니다.
 
옆에 그 흔한 환자감시장치 하나 없는 것을 보면 신체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겪는 것도 아닐 텝니다.
 
……하지만 정신은 별로 멀쩡하지 않은 것 같군요.
 
어째서 당신이 병원에 있는 건지 언제부터 병원에 있었는지, 따위의 사소한 것들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누군가 개입하여 왜곡시킨 양 띄엄띄엄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마저 불분명하고 또 남루합니다.
 
그런 유쾌하지 않은 기억 속에서 헤매던 사이,
 
굳게 닫힌 문의 바깥에서 노크 소리와 전자음이 몇 번 들려옵니다.
 
슬레타:(눈을 돌려 확인합니다.)
 
허락을 구하는 것보다도 인사치레에 더 가까웠는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리네요.
 
들어온 사람은…… 미오리네입니다.
 
슬레타:(링거랑 주변 환경을 보곤) 저, 어디 다쳤어요?
 
미오리네:...깨있었네? 크게 다친건 아니야.
 
슬레타:방금 일어났어요...
저 며칠 동안 자고 있었어요?
생, 생각이 안나는데.
 
미오리네:입원한지 일주일 쯤 됐어. 이제 퇴원해도 된다고 들어서 데리러 왔어.
 
슬레타:일주일.
 
미오리네:그정도면 독감은 다 나았겠지?
 
슬레타:(입술을 옴싹달싹하다가) 독감이요?
저 독감걸렸어요?
 
미오리네:응, 지독하게 앓아서 입원했었어.
 
슬레타:으음....(고개를 갸웃하다가) 그렇군요.
다 나았나봐요!
 
미오리네:맞아, 퇴원하고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자. 어때?
 
슬레타:크리스마스 파티! 너무 좋아요!
(자리에서 일어나도 되는지 허락을 구합니다.)
 
미오리네:(끄덕입니다.)
 
슬레타:(실실거리면서) 우리 뭐 사갈까요? 치킨? 케이크?
아 이거 뽑아주시겠죠?
(링거줄을 보입니다.)
 
미오리네:나중에 퇴원할때 뽑아줄거야.
지금은 얼굴 보러 온거라서...
 
슬레타:아!
네! 그러면 얌전히 기다릴게요!
 
기다리겠다는 한 마디에 미오리네의 얼굴이 미세하게 밝아집니다.
 
고개를 주억인 미오리네가 속삭입니다.
 
미오리네:오늘 자정에 데리러 올게, 그때 깨어 있어야 해.
 
슬레타:자정이요?
그렇게 늦게 퇴원해요? 우리?
 
미오리네:응, 그렇게 됐네.
 
슬레타:그, 그러면 가게가 다 닫을텐데...(우물쭈물거려요)
 
미오리네:자고 일어나서 사러 나가면 되지.
같이.
 
슬레타:같이! 네네! 같이가요!
 
미오리네:좋아. 일이 있어서 이제 가볼게.
자정에 봐.
 
슬레타:(고개를 빠르고 끄덕이고는 침대에 걸터앉아요.)
네!
 
방문한 목적은 그것뿐이었는지, 조금 잰 몸짓으로 일어나서 외투를 걸쳐 입고 병실의 문을 엽니다.
 
나가기 직전 당신에게 작게 미소짓는 것조차 잊지 않네요.
 
서둘러 병실 바깥으로 나서서 문을 닫습니다.
 
<지능> 혹은 <관찰> 판정
 
슬레타:

슬레타

Spot Hidden

보통

성공
53vs.65
 
 
마치 무언가에 쫓기기라도 하는 것마냥 행동이 서툴고 서두르는 태가 납니다.
 
슬레타:(나랑 같이 가려고 그런가봐~)
 
문이 닫히며 타인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집니다.
 
외부와 단절되는 소리가 당신만 남은 흰 방에 공허하게 울립니다.
 
혼자 남은 병실을 살펴볼까요?
 
슬레타:(좋아요)
 
▶ 병실
 
정갈하고 또 건조한 1인용 병실에 사람의 흔적이라곤 당신의 것밖에 없습니다.
 
누군가 드나들기는 하는 걸까요? 아니면 옆에 다른 병실이 있기는 한 걸까요.
 
약간의 소음도 없는 방 안은 침 삼키는 소리마저 크게 울릴 정도로 고요합니다.
 
병실 조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조사 포인트는 <협탁>, <창문>,<테이블> 그리고 <미닫이문>입니다.
 
슬레타:조용하네... 여기
(협탁을 열어봅니다.)
 
▷ 협탁
 
한 칸짜리 작은 <서랍>이 딸린 나무 재질의 협탁입니다.
 
위에 올려진 작은 <가습기>가 규칙적이고 조용한 기계음을 내면서 돌아갑니다.
 
슬레타:(서랍을 열어봅니다.)
 
▶ 서랍
 
부드러이 열리는 서랍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텅 비었습니다.
 
슬레타:(아무것도 없니? 생각해봅니다)

슬레타

Intelligence

보통

실패
90vs.55
 
비었네?
 
추운 겨울, 텅 빈 서랍 안.
 
쓸쓸해지는 기분이네요.
 
슬레타:빨리 밤이 오면 좋겠다.
(가습기나 봅시다.)
 
▶ 가습기
 
작고 가벼운 가습기에서 기화된 액체가 뿜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건조하고 크고 황량한 이 병실에 가습기는 하나뿐이군요. 보고 있자니 나른해집니다.
 
슬레타:(창문으로 가볼게요.)
 
▷ 창문
 
창틀에 작은 다육식물이 하나 올려진 창문입니다.
 
유리는 별로 깨끗하지 않고 창틀에는 먼지가 쌓였습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것 같지는 않죠, 1인실을 사용하는 환자의 방인데도요…….
 
슬레타:다육이~ (손으로 만지작거리다가 테이블 쪽으로 돌아갑니다.)
 
테이블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슬레타:여기는 전부 비었네? 끙...
(링거줄을 이끌고 미닫이문쪽으로 가봅니다.)
아무도 없나?
 
▷ 미닫이문
 
미는 방식으로 여닫을 수 있는 회색 문입니다.
 
분명 당신도 이 문을 통해 들어왔었을 텐데 기억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슬레타:(덜컹거리며 문을 밀어봐도 안 열리네요.)
왜지...?
(근력을 사용합니다.)

슬레타

Strength

보통

실패
91vs.70
 
 
너무 오래 누워있었던 모양이네요... 링거에 피가 역류합니다.
 
슬레타:이러면 안되는 거 아닌가...
(축 처진 상태로 베드로 돌아갑니다.)
 
보통 환자가 있는 병실의 문을 안에서 잠그면 잠갔지 바깥에서 잠글 수 있는 구조로 만들던가요?
 
이건 마치, 병실보다도 누군가를 가두고 격리하는 꼴에 더 가깝지 않습니까.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성공
32vs.60
 
 
<지능> 판정
 
슬레타:

슬레타

Intelligence

보통

성공
45vs.55
 
 
어쩐지 심상치 않은 바깥의 분위기, 부서진 것처럼 부유하는 기억들,
 
잔뜩 가라앉아 적막한 분위기의 공간과 범죄자를 수감하는 것마냥 바깥에서 잠그도록 설정된 미닫이문.
 
당신은 지금 평범한 병원에 평범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평범한 입원 절차를 밟고
 
입원해 있는 게 아닌 듯 합니다.
 
슬레타:...자정에 오신다고 했는데.
정말 오실 수 있나...
(살짝 기가 죽습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금세 해가 떨어집니다.
 
겨울이라 낮이 짧은 탓인지, 몇 번 눈 깜빡였을 뿐인데 순식간에 저녁이 왔습니다.
 
꼬르륵...
 
새삼스레 배가 고픕니다.
 
일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었으니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하얗고 쓸쓸한 병실에는 핸드폰은커녕 평범한 벽시계도 하나 없어서 현재를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슬레타:네!
 
이번에도 이어지는 전자음은 이제 심상찮게만 들립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은 채 문이 열리고, 간호사가 깨어 있는 당신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습니다.
 
<심리학> 판정
 
슬레타:

슬레타

Psychology

보통

실패
29vs.10
 
식사시간인가요?
 
이해할 수 없는 얼굴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여상스러운 낯을 한 간호사가 몇 번씩이나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엽니다.
 
간호사: 슬레타씨, 깨어나셨군요. 너스콜을 누르셨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요,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슬레타:너스콜?
 
간호사: (조금 서두르며) 네, 너스콜이요.
 
슬레타:(그런 게 있구나)
 
간이 테이블에 식사─그마저도 포장된 빵과 샐러드 따위가 전부이긴 합니다마는─를 차린 간호사가 잰걸음으로 병실을 나섭니다.
 
드르륵, 하고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
 
그 어떤 단어도 더 듣지 않겠다는 듯 간호사는 조금 세게 문을 닫습니다.
 
탁 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습니다.
 
슬레타:밥이 적다...
(빵을 뜯고 입에 한입 넣습니다.)
스프라도 있었으면 좋을텐데.
 
병원밥 치고는 나름 달달짭짤하네요.
 
슬레타:잉...
(다 먹었지만 양이 적습니다.)
 
<지능> 판정
 
슬레타:

슬레타

Intelligence

보통

실패
84vs.55
 
 
간이 테이블에 널부러진 식기가 왜 이렇게 공허해 보일까요.
 
본능적으로, 아까 그 간호사가 다시 당신을 방문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슬레타:밥...
조금만 더 주지.
 
미닫이문은 여전히 잠겨 있습니다.
 
시계가 없는 것 역시 여전한지라 시간을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하늘은 계속 어두워지는군요.
 
확실한 것이라곤 미오리네가 다시 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피상적이고 진위조차 불분명한 사실 하나뿐입니다.
 
슬레타:(자정까지 얼마나 남았을까요)
 
……그리고, 시간이 또 얼마나 지났는지조차 가물가물할 무렵에,
 
*
 
똑똑.
 
*
 
이제는 질릴 지경인 노크 소리가, 그리고 무언가를 누르는 전자음이 들려옵니다.
 
오늘 오전과 다른 점이라면 미닫이문이 아주 천천히 조심스레 열렸다는 점일까요.
 
문이 완전히 열리고 한 손에 코트를 든 미오리네가 보입니다.
 
다른 손은 제 입가에 가져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의사를 전달하고 있군요.
 
슬레타:(방긋 웃습니다.) 미오리네씨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미오리네:쉿, 조용히 해.
 
슬레타:(조용히) 네.
 
미오리네는 급히 벽을 더듬어 병실의 불을 끕니다.
 
미오리네:(조용히 속삭이며) 따로 챙겨야 할 짐은 없는거지?
 
슬레타:네네. 짐 없었어요.
옷은 벗을까요?
환자복이니까.
 
미오리네:좋아, 얼른 나와... 조심해서...
아니, 안 갈아입어도 되니까.
 
슬레타:알았어요.
숨바꼭질 하는 거 같아요.
밤이라서.
 
미오리네:조금 추울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코트만 입고 나가자.
숨바꼭질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네.
밤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깰지도 모르니까.
 
슬레타:(코트를 걸치고 나갈 준비를 합니다.)
 
미오리네:(기다려주다가 슬레타의 손을 잡아 끕니다.)
 
당신은 미오리네의 손에 이끌려 기묘한 병실을 나섭니다.
 
절대로 당신을 내보낼 것 같지 않던 미닫이문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열리고,
 
곧 정갈히 닫힙니다.
 
내디딘 복도는 과연 적막하고 또 고요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불이 단 하나도 켜지지 않아서 굉장히 어두워요.
 
바깥에서 보니 병실의 미닫이문에 달린 잠금장치가 보이는군요, 비밀번호를 입력해서 여닫는 방식이었나 봐요.
 
미오리네가 서둘러 나가자며, 이쪽으로 가면 비상계단이 있다며 당신의 손을 잡아끕니다.
 
떠나기 전, 복도에 <관찰> 판정
 
슬레타:

슬레타

Spot Hidden

보통

어려움성공
21vs.65
 
 
당신의 병실 앞, 무언가 담긴 카트가 보입니다.
 
슬레타:(뭐지?)
 
얼핏 보기엔 주사기와 주사바늘 그리고 여러 약품 따위의 실루엣으로 보입니다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도 전에 미오리네가 당신을 끌고 비상계단으로 향합니다.
 
슬레타:(주사기)
 
얼핏 보았던 무색의 액체가 반쯤 찬 투명한 병에 <펜토바르비탈>이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슬레타:(그런 게 뭔지 알리가 없죠.)
 
미오리네:뭘 보고 있는거야? 나가자.
 
슬레타:네, 나가요.
 
<민첩>, <도약> 혹은 <건강> 판정
 
슬레타:

슬레타

Dexterity

보통

성공
45vs.60
 
 
<행운> 판정
 
슬레타:

슬레타

Luck

보통

성공
49vs.50
 
 
삼 층에는 아무도 없는 모양이네요.
 
슬레타:(조용하다...)
 
<민첩> 판정
 
슬레타:

슬레타

Dexterity

보통

어려움성공
30vs.60
 
 
<행운> 판정
 
슬레타:

슬레타

Luck

보통

실패
96vs.50
 
 
이 층에 도착하자, 저 멀리에서 울리는 발소리가 들립니다.
 
미오리네:(숨 죽이고 슬레타를 끌고 계단을 내려갑니다.)
 
슬레타:(얌전)
 
<민첩> 판정
 
슬레타:

슬레타

Dexterity

보통

성공
41vs.60
 
 
<행운> 판정
 
슬레타:

슬레타

Luck

보통

실패
95vs.50
 
(도와줘 미오리네씨.)
 
계단에 있던 유리 조각이 발에 박혀 상처를 입습니다.
 
HP - 1,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극단적성공
12vs.60
 
(아차, 피난다.)
 
미오리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로 일단 끌고 나갑니다.)
 
슬레타:(피난 부분을 바지 밑단으로 가리고는 쫑쫑거리며 따라갑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고 나서야 병원의 유리문 바깥으로 나섭니다.
 
겨울의 새벽, 군청색 공기가 당신을 감싸안습니다.
 
유리창을 통하지 않고 맨눈으로 본 세계는 병원에서 보던 것과 달리 그다지 황폐하거나 스산해 보이지 않고,
 
여전히 공기가 차갑고 바람이 건조함에도 겨울 새벽이라는 배경에서 기인한 고즈넉한 운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쩐지 이 모든 풍경이 처음 보는 것처럼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않았더라면,
 
이 추운 겨울 밤에 달랑 코트 한 장 입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바닥의 으슬으슬한 냉기가 욱씬거리는 맨발을 타고 뼛속까지 전해지지만 않았더라면,
 
훨씬 더 낭만적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오리네:(여기까지 나오면 괜찮겠지... 그제서야 슬레타를 돌아봅니다.)
 
슬레타:(쿨쩍, 코를 먹습니다.)
 
미오리네:많이 춥지? 버스를 타면 좀 괜찮을거야.
 
슬레타:저, 그러면 잠깐만.
이거 좀.
(발을 보여줍니다.)
 
미오리네:아... 잠시만, 기다려봐.
(들고 있던 가방에서 응급키트를 꺼내서 슬레타의 맨발을 치료합니다.)
 
HP +1
 
슬레타:따가워요.
 
미오리네:신발까지는... 생각을 못했어. 급해서.
 
슬레타:급해요?
 
미오리네:곧 크리스마스잖아.
 
슬레타:아, 그래서구나.
크리스마스 기대돼요!
 
미오리네:다행이야. 그 전에 퇴원해서.
 
슬레타:헤헤.
 
미오리네:자, 다 됐다!
버스 타러 가자.
 
슬레타:네! 네!
 
버스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흔한 가로등마저 몇 개 없어서 주변이 어둑합니다.
 
어지간히 외곽이 아니고서야 가로수며 등 몇 개 정도는 있을 법도 하지 않나요?
 
미오리네가 당신의 손에 깍지를 줘서 힘 줘서 잡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이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합니다.
 
지금까지 어떤 정류장에서도 멈추지 않은 듯, 이 정류장도 지나치려던 것을 미오리네가 간신히 잡았습니다.
 
슬레타:집까지 얼마나 걸려요?
 
미오리네:조금 걸릴 것 같은데.
그동안 크리스마스에 뭐 할지 얘기하자.
 
슬레타:와! 좋아요.
저는 폭죽 터트리고 싶어요!
 
미오리네:그래, 좋아. 밖에서라면.
 
슬레타:스파클링 와인이랑요.
또 케이크는 딸기가 좋아요.
제일 큰 거 잘라서 드릴게요.
그리고 또.
치킨도요.
 
미오리네:좋아. 전부 다 하자.
나도 몇개 생각해둔게 있지.
 
슬레타:어떤 건데요?
 
미오리네:집에 가서 얘기 해줄게.
 
슬레타:네, 좋아요!
 
승객 없이 텅 비어 있으나 휑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버스 내부의 따스한 공기에 몸이 녹습니다.
 
기사가 크게 틀어둔 라디오에서 철 지난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려옵니다.
 
*
 
I just want you for my own, more than you could ever know.
 
Make my wish come true…… oh,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
 
덜컹거리는 규칙적인 진동. 오로지 둘만 태운 버스가 새벽의 도로를 나아갑니다.
 
크리스마스 캐럴과 포근한 공기, 당신의 손을 놓으려 들지 않는 미오리네.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고즈넉한 분위기에
 
미오리네:(슬레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댑니다.)
피곤하지? 잠깐 좀 자.
 
슬레타:도착하면 깨워줄래요?
 
미오리네:응.
 
슬레타:(미오리네의 머리카락에 뺨을 비비적 대다가 하품을 크게 합니다.)
그럼 조금.
 
미오리네:잘 자.
 
슬레타는 그대로 잠에 빠집니다.
 
누군가 당신의 귀에 대고 속살댑니다.
 
???:가엾은 슬레타, 고작 미오리네라는 여자와 시간을 낭비하는 꼴이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몽중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네겐 돌아갈 곳이 있어 그건 미오리네가 아니야,
미오리네가 언제까지 네 곁에서 네 편을 들어줄 것 같아?
무슨 목적으로 너를 데리고 나왔을까? 설마 정말 고작 '크리스마스 파티' 때문일까?
 
당신을 충동질합니다.
 
그러니 눈을 뜨라고.
 
더 먼 곳을 보라고.
 
더 높고 위대한 곳 향해 나아가야 하므로 고작 미오리네 따위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당장 그 목을 조르라고.
 
맨발로 바깥을 활보하라고.
 
크게 웃고 크게 울고 온갖 모독적인 저주를 소리 내 외치며,
 
광인처럼 번들대는 눈동자로 세상을 마주하라고.
 
SANC 1/1D3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성공
44vs.60
 
이상한, 소리...
 
<듣기> 와 <정신력> 복합 판정
 
슬레타:

슬레타

Listen

보통

어려움성공
20vs.65
 

슬레타

Power

보통

실패
90vs.60
 
 
이 목소리, 익숙합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제안하던,
 
버스를 타고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던,
 
미오리네의 목소리가 아닌가요?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68vs.59
 
...
크리스마스 파티.
좋은 걸.
 
목소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댑니다.
 
거슬려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의식이 멀어지지만 잠드는 것과 같은 포근함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 기이한 적막.
 
*
 
무어라 대꾸하기도 전에 정신이 암흑에 잡아먹힙니다.
 
희끄무레한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포근한 오리털 이불과 베개에 부드럽게 감싸인 상태로 슬레타는 눈을 뜹니다.
 
야심한 새벽에 귀가한 탓인지 기상 시간이 늦습니다.
 
침대 근처에는 내던져진 겉옷이 보이고,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세 시 이십일 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옆에는 아직 잠들어 있는 미오리네가 보입니다.
 
늦게 잠든걸까요, 피곤에 짓무른 눈가.
 
그럼에도 고고해보이는 사람.
 
아주 혹독하고 시린 겨울 속에 던져 놓아도 오래오래 홀로 살아갈 것만 같은…….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성공
46vs.60
 
헤헤, 미오리네씨. 잠꾸러기~
 
미오리네:...아.
 
슬레타:벌써 3시예요.
 
눈을 뜬 미오리네는 한참 멍하니 당신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슬레타:오늘은 뭐하실래요?
좀 더 자고 싶어요?
 
미오리네:아, 아냐. 일어나야지...
너무 늦게 일어났네.
 
슬레타:(침대에서 일어나서 건강하게 웃습니다.)
점심먹어요!
 
미오리네:(피곤에 절은듯 힘겹게 일어나 앉습니다.)
그래, 나가야하니까 간단하게 먹자.
 
슬레타:네~ 여기 물이랑.
많이 피곤해요?
 
미오리네:뭐, 조금.
(물을 받아서 마십니다.)
 
슬레타:씻는 거 도와드릴까요?
어차피 같이 나갈거니까.
 
미오리네:하아?
...시간 절약은 되겠네.
 
슬레타:그쵸!
 
미오리네:좋아. 같이 들어가자.
 
슬레타:그럼 식사 먼저 해둘게요!
토스트면 됐죠?
 
미오리네:아냐, 넌 얼마전까지 환자였잖아.
내가 해줄게.
 
슬레타:네~
(얌전히 식탁에 앉아있습니다.)
 
미오리네:심심하지 않겠어?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슬레타:으음. 그럼 핸드폰으로 놀고 있을까요?
 
미오리네:글쎄, 아무거나. 지금 집에 재밌는게 없어서.
나가서 이것저것 사올게 많아.
 
슬레타:역시! 파티 도구죠?
고깔모자?
 
미오리네:네가 말했던 폭죽도 사야지.
 
슬레타:후후, 맞아요.
10개 묶음으로 살거예요.
 
미오리네:금방 동나겠는데.
 
슬레타:폭죽만 터트릴 건 아니잖아요.
밥도 먹고 케이크도 자르고
밤에 또 놀거잖아요.
 
미오리네:...아무튼, 신경 쓰이니까.
다른 데 가있어!
 
슬레타:네에~
 
현재 위치는 거실이며, <침실>, <거실> 그리고 <주방>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슬레타:(거실을 두리번 거립니다.)
뭐 놀 게 없나?
 
▶ 거실
 
적당히 넓고 건조한, 휑하기 짝이 없는 거실입니다.
 
바닥에 깔린 붉은 러그만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자더니 정작 집은 하나도 꾸며두지 않았군요.
 
거실 가운데의 밋밋한 트리가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슬레타:헉, 트리!
 
조사 포인트는 <트리>, <소파> 그리고 입니다.
 
<텔레비전> 입니다.
 
슬레타:(트리 먼저)
 
▷ 트리
 
붉은 크리스마스 러그 위에 올려진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직 하나도 꾸며지지 않았습니다.
 
트리의 아래에는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장식용 전구와 볼, 리본, 래터링 아크릴, 솔방울 등의 장식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슬레타:(이건. 꾸미라는 걸거야.)
솔방울을 제일 위에 단다.
많은~ 솔방울~
 
미오리네:(아무것도 모르는 미오리네는 열심히 요리를 합니다....)
 
슬레타:(솔방울로 가득한~ 트리)
간간히 전구도 달고~
리본도 짠~
(솔방울이 가득 달린 트리 완성)
 
멋진 트리가 완성 되었습니다.
 
굉장히 야생적인 미가 느껴집니다.
 
슬레타:(이제 소파로 가서 텔레비전을 틀어봅니다.)
 
▷ 2인용 소파
 
아이보리색 소파 위에는 산타와 루돌프가 그려진 못생긴 모양 쿠션이 놓여 있습니다.
 
TV를 틀자 영화 채널이 송출됩니다.
 
지금은 러브 액츄얼리가 상영되고 있군요.
 
*
 
더 나쁜 일들을 생각했어.
 
사랑보다 더 큰 고통이 대체 어디에 있는데요?
 
……그래, 네 말이 맞구나.
 
*
 
<관찰> 판정
 
슬레타:

슬레타

Spot Hidden

보통

어려움성공
14vs.65
 
 
영화가 계속해서 흘러가던 중, 화면에 잠시 뉴스 속보를 알리는 붉은 자막이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집니다.
 
……뭐라고 써있던 거죠? 뉴스 속보를 왜 저렇게 빠르게 전달하는 건가요?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실패
69vs.60
 
 
얼핏 스쳐지나간 속보에
 
전국에 폭설 예상,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별걸 다 속보로 송출하는군요.
 
슬레타:와~ 눈이다~
미오리네씨한테 말해줘야지~
(주방으로 갑니다.)
 
미오리네:응?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슬레타:이번 크리스마스에 눈온대요!
 
미오리네:화이트 크리스마스네.
 
슬레타:그렇죠?
 
미오리네:크리스마스엔 나가서 광장에 있는 트리를 보자.
 
슬레타:분위기 있어요~ 사람도 많겠다.
로맨틱해요~
 
미오리네:좋아할 것 같았어.
 
슬레타:역시 미오리네 씨예요.
도와드릴까요?
 
미오리네:아니, 할 수 있으니까...
 
슬레타:미오리네 씨가 그렇다면야.
 
미오리네:(조심스럽게 칼로 토마토를 썰며) 정신 사나우니까 부를때 다시 와줄래?
 
슬레타:네에~
(그럼 침실로 갈래요)
 
▶ 침실
 
곤색의 깔끔한 침구가 올려진 푹신한 침대, 한쪽 벽면에 선 전신거울과 책장.
 
미오리네의 것으로 보이는 책상과 서랍.
 
생활감이 느껴지는 작은 방의 바닥에는 당신과 미오리네가 어젯밤 벗어던진 코트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조사 포인트는 <전신거울>, <책상>, <서랍>, <옷장> 그리고 <미오리네의 외투>입니다.
 
슬레타:(바닥에 있는 외투를 주워듭니다.)
어제는 그대로 침대로 가버려서 내팽개쳤었지?
(주섬주섬)
 
▷ 미오리네의 외투
 
어젯밤에 미오리네가 입고 있던 외투입니다.
 
꼭두새벽에 집에 들어오고 나서, 외투를 옷걸이에 걸어둘 새도 없이 대충 벗어던지고 그대로 침대로 갔었죠.
 
슬레타:(아무래도)
(주머니 속에 뭔가 있을까요?)
 
외투의 주머니에서 종이쪽지 하나가 만져집니다. 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았습니다.
 
슬레타:(읽어봅니다.)
 
▶ 종이쪽지
 
쪽지의 안에는 네 자리 숫자가 휘갈겨 적혀 있습니다. 이게 무슨 숫자죠? 생일도, 어떤 날짜도 아닌 것 같은데.
 
슬레타:(무슨 숫자지?)
 
<지능>으로 생각해볼까요?
 
슬레타:

슬레타

Intelligence

보통

실패
63vs.55
 
 
어쩌면 당신이 잊고 있는 기념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슬레타:(숫자만 읽어봅니다.)
 
3023 라고 써있네요
 
슬레타:3023? 무슨 숫자지?
(다시 접어서 몰래 집어넣습니다.)
(책장으로 가봅니다.)
 
▷ 책상
 
생활감이 느껴지는 책상 위에는 펜, <몇 권의 책>과 담뱃갑 따위가 올려져 있습니다. 구석에는 <포스트잇 뭉치>도 보입니다.
 
슬레타:(몇 권의 책을 둘러봅니다.)
미오리네 씨의 책이다.
 
▶ 몇 권의 책
 
평소 미오리네가 관심을 보이던 것과는 다른 서적들입니다. 평범하네요…… 취향이 바뀐 걸까요? 별달리 눈에 띄는 것은 없습니다.
 
슬레타:(포스트잇도 궁금하네요.)
 
▶ 포스트잇 뭉치
 
구석에 쌓여 있는 포스트잇 뭉치에는 다양한 활자가 적혀 있습니다.
 
<장 봐올 목록>, <크리스마스 준비물>, <청과점 사장님 전화번호> 등.
 
당신에 대한 내용도 보입니다─<슬레타와 함께 할 것 목록>. =
 
포스트잇 세 장쯤을 이어 붙인 긴 목록입니다.
 
슬레타:(셋 다 읽어봅니다.)
 
어글리 스웨터 입기 / 구움과자 먹으러 가기 /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 / 나 홀로 집에 보기 / 같이 민스파이 굽기 / 캐럴 틀어두고 밤새워 놀기 / 겨우살이 아래에서 입맞추기 /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기 / 자정에 집 앞 광장에 나가기……
 
목록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슬레타:우와아...
(못본 척하며 내려둡니다.)
키스...
(그부분만 자꾸 생각납니다.)
(서둘러 서랍을 열어봅니다.)
 
▷ 서랍
 
세 칸으로 이루어진 흰 원목 서랍입니다. 책상의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는 걸로 보아 필기구 따위가 들었을 것 같습니다.
 
세 칸 모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슬레타:(모두 보죠.)
(위부터)
 
▶ 첫 번째 칸
 
대충 보기만 해도 어려운 내용이 가득한 공책이 여러개 들어있습니다. 빽빽하게 미오리네의 필기체로 적혀져있습니다.
 
슬레타:미오리네 씨는 똑똑하니까.
글씨체도 예뻐.
 
▶ 두 번째 칸
 
아직 개시하지 않은 새 담배 몇 갑과 정체모를 액체가 든 병이 들어 있습니다.
 
슬레타:이건 뭐지? (병을 들어올립니다.)
 
겉보기엔 잘 모르겠네요. 라벨 조차 붙어있지 않습니다.
 
슬레타:(다시 집어넣습니다.)
 
▶ 세 번째 칸
 
작은 노트 한 권 외에는 텅 비었습니다.
 
노트의 두께를 보아하니 두께를 보아하니 신문 따위를 스크랩해두는 노트인 것 같습니다.
 
슬레타:(노트를 열어봅니다.)
 
노트를 펼친다면,
 
몇 장의 신문을 제외하고는 스크랩북 속에서 건질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스크랩된 신문들마저도 최근의 것이고, 내용이 부실하고 양이 적습니다.
 
슬레타:어떤 내용이지?
 
적힌 내용은…… 지구 멸망에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대충 요약하자면
 
어느 우주적 존재로 인해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현재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지식인들이 협동해서 이를 막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정도겠네요.
 
그다지 영양가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신문에 이런 저급 찌라시를 싣다니 정말 어지간히 실을 내용도 없었던 모양이죠.
 
미오리네는 왜 이런 저질 신문을 스크랩해둔 걸까요?
 
슬레타:(다시 덮어둡니다.)
흥흥~ 다른 거~
(옷장 보러갑니다.)
 
▷ 옷장
 
깔끔한 원목 옷장의 안에는 겨울용 외투와 스웨터, 니트 따위가 들었습니다.
 
옷장 안에서 섬유유연제 향이 진하게 나는 것을 보아 정리한 지 얼마 안 된 모양입니다.
 
슬레타:(킁킁 맡습니다.)
미오리네 씨 냄새.

슬레타

Spot Hidden

보통

성공
41vs.65
 
 
옷 사이로 잠겨있는 캐리어가 보입니다.
 
슬레타:(캐리어에 숫자 자물쇠가 걸려있나요?)
 
숫자 자물쇠도 있고 옆에 다른 잠금 장치도 붙어있습니다.
 
철저하게 잠궈두었네요.
 
슬레타:이건 못풀겠다.
(아쉬워하면서도 괜시리 툭툭 건드립니다.)
(전신거울로 가봅니다.)
 
▷ 전신거울
 
벽면에 선 전신거울에 당신의 몸이 비칩니다.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자기 자신이란 으레 그렇듯 꽤 낯설군요.
 
당신의 몸인데도 어쩐지 당신의 것 같지 않고,
 
약간은 이질적입니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성공
50vs.60
 
 
거울 속의 당신은 빤히 당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거울 속의 당신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관찰> 판정 할 수 있습니다.
 
슬레타:

슬레타

Spot Hidden

보통

실패
78vs.65
 
 
별달리 눈에 띄는 점은 없군요. 거울에 묻은 작은 얼룩이 보입니다. 닦아놓는 게 좋겠어요.
 
슬레타:(닦아둡니다.)
 
미오리네:슬레타! 다 됐으니까 나와.
 
슬레타:네에~
(가기 전에 이불 한번 킁킁대다 나갑니다.)
 
▶ 주방
 
미오리네가 손수 차린 간소한 식탁입니다.
 
약간 그을린 토스트와 무른 샐러드, 하지만 토마토만은 완벽한 상태네요.
 
슬레타:맛있어보여요~ 미오리네씨!
 
미오리네:(미소 지으며) 많이 먹어.
 
슬레타:(미오리네가 해준 거니까 제 몫 전부 먹습니다.)
 
미오리네:(깨작 깨작 먹다가) ...어때?
 
슬레타:마잇서요.
(토마토도 포크로 찍어서 먹어요.)
 
미오리네:또 해줄게.
 
슬레타:와아~
다 먹고 씻으러 가요~
 
미오리네:좋아. (포크를 내려 놓습니다.)
 
겨울 공기가 선선한 오후입니다.
 
해가 벌써 반쯤 떨어지긴 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느껴져요.
 
단출하던 미오리네의 집과는 다르게, 온 거리가 성탄을 축하하는 분위기로 꾸며져 있습니다.
 
상록수를 감싼 색색의 전구들과 금빛으로 빛나는 건물들,
 
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나무들도 붉은 볼 장식과 금빛 전구를 매달고 빛납니다.
 
가히 찬란합니다.
 
3군데를 둘러 볼 수 있습니다.
 
슬레타:미오리네 씨! 저희 뭐할까요?!
커플룩 사요! 우리!
 
미오리네:그럼 옷가게 먼저 들어가볼까?
 
▶ 옷 가게
 
맑은 도어벨 소리. 따뜻한 가게 내부의 공기가 꽁꽁 언 귀를 녹입니다.
 
분홍색과 흰색을 메인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가게의 중앙에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귀엽고 괴상한 어글리 스웨터들이 잔뜩 걸려 있습니다.
 
초록색 바탕에 BIRTHDAY BOY라는 종이 피켓을 든 예수의 모습이 프린팅된 스웨터, 빨간색 바탕에 선글라스를 낀 고양이와 트리가 프린팅된 스웨터,
 
검은색 바탕에 루돌프의 코가 정중앙에 박힌 입체적인 스웨터……. 외에도 멀쩡한 겨울용 옷들도 보입니다.
 
슬레타:와 저 스웨터! 너무 귀여워요~
(루돌프 코를 가리키면서)
루돌프씨~
 
미오리네:(입가에 손을 가져가서 웃으며) 너 같아.
 
슬레타:귀엽다는 뜻이죠?
 
미오리네:...귀여워.
 
슬레타:헤헤, 미오리네씨도 귀여워요.
저기 봐요! 공룡 스웨터도 있어요~
 
미오리네:(다른 옷들을 살피다가 공룡을 보고 웃습니다.)
네가 고른 티가 나네.
 
슬레타:미오리네 씨도 같은 거 입으실래요?
 
미오리네:그럼 네가 골라줘. 이번만 어울려줄게.
 
슬레타:그럼 미오리네씨는 스테고사우르스요.
전 티라노할래요~
 
미오리네:(아, 그럴 것 같았어.)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말하고 다른 옷걸이들을 살펴봅니다.)
 
옷을 골랐으니 계산을 해야겠네요.
 
슬레타:미오리네 씨! 계산해주세요!
(자신만만함)
 
미오리네는 계산대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되려 조금 당황한 낯으로 당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미오리네:(잠깐 멈칫하다가 다가가서 슬레타 옆에 서서 지갑을 꺼냅니다.)
자, 계산 해주세요.
이제 어디 갈까? 더 볼 건 없지?
 
슬레타:네~ 선물 사러 가요~
 
미오리네:(슬레타의 손을 잡습니다.)
 
▶ 선물 가게
 
발랄한 캐럴이 울려 퍼지는 선물 가게의 안에서는 달콤한 초콜릿 냄새가 납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에는 문구류를 비롯한 잡화, 스노우볼과 인형, 값비싼 오르골과 빈티지 브로치 등의 다양한 선물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미오리네:(가게에 도착하자 잡은 손을 풀고 진열된 걸 살펴봅니다.)
 
슬레타:(미오리네 씨한테 선물할 거...)
(돈은 없지만)
 
한참 미오리네의 선물을 고르고 있었을까요,
 
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슬레타에게 말을 겁니다.
 
A: 애인 선물 고르시는 거예요? 어쩜, 로맨틱해라.
 
슬레타:헤헤헤. (바보같이 실실 웃습니다.)
 
수다스러운 데다가 오지랖까지 넓은 커플인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이것저것 들이대며 추천해주네요.
 
A: 자기는 크리스마스에 내가 뭘 주면 좋을 것 같아?
 
B: 나라면…… 반지는 어때?
 
A: 그래? 그렇구나. 이거 어떠세요? 분명 마음에 들어할 거예요! 아, 저희가 너무 오지랖이 넓었나요?
 
슬레타:(반지...?)
 
B: 아, 그렇네. 죄송합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니까 설레서 그만 아무나 붙잡고 떠들어 버렸네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A: 잘 있어요~! 메리 크리스마스!
 
슬레타:메리크리스마스~
(미오리네 씨한테 반지... 너무 예쁠 거 같은데.)
그치만 호수도 모르는데...
(약지만 만지작거려요.)
 
미오리네:(조금 넋나간 표정으로 곁에 다가옵니다.)
 
슬레타:미, 미오리네씨!
(땀만 잔뜩 흘립니다.)
 
미오리네:아, 응. 왜 그래?
 
슬레타:..........바, 반지.
같이 고르면 안 돼요?
반, 지.
반지요.
 
미오리네:...보통 이런 건 깜짝 놀래키면서 주지 않아?
 
슬레타:그치만 저 호수도 모르는걸요.
 
미오리네:자. (왼손을 내밉니다.)
 
슬레타:그리고... 취향도 모르니까요.
아,
(열심히 재보는 흉내라도 내봅니다.)
(사실 껴봐야 아는거지만)
 
미오리네:(하는 짓을 보며 소리내서 웃습니다.) 끼워줄래?
 
슬레타:(빠르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커플링이요.
 
미오리네:응.
직접 골라줘.
 
슬레타:아! 네!
백금 반지가 좋아요...
미오리네 씨를 닮은 색...
 
미오리네:(눈으로 진열대를 훑으며) 비슷한 색은 있네.
 
슬레타:네네, 있어요.
이건 어때요?
(가운데 보석이 박힌 디자인의 반지입니다.)
 
미오리네:좋아.
사이즈가 맞으면 좋겠네.
(보석의 색만 다른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가리키며) 너는 이걸로 하는게 어때?
 
슬레타:네네!
 
미오리네:(진열대의 반지를 꺼내고 슬레타의 왼손을 듭니다.)
(슬레타 손 아래에 손을 넣어서 왼손을 피고, 약지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슬레타:와아.... 와...
 
미오리네:자, 딱 들어가네.
 
슬레타:미, 미오리네 씨도.
제가 끼워드릴게요.
 
미오리네:(귀 끝이 살짝 붉어지며 끄덕입니다.)
 
슬레타:(달달 떨면서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줍니다.)
 
미오리네:(손에 끼워진 반지를 들어서 봅니다.)
알잖아, 호수.
 
슬레타:네에...
이제 알아요.
 
미오리네:(왼손으로 슬레타의 손을 깍지껴서 잡습니다.)
만족해?
 
슬레타:네! 네!
 
미오리네:이제 어디 가고 싶어?
 
슬레타:4
 
▶ 서점
 
큰 건물의 지하 1층에 위치한 서점입니다.
 
들어서자마자 온갖 자기계발서와 에세이들이 잔뜩 올려진 매대가 보입니다.
 
공기는 따뜻하고 서점 특유의 책 냄새가 나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슬레타:좋은 냄새~
 
미오리네:(슬레타의 손을 잡은 채로 서가를 살펴봅니다.)
 
슬레타:뭐가 있어요?
 
<행운> 혹은 <관찰> 판정
 
슬레타:

슬레타

Luck

보통

성공
43vs.50
 
 
서가의 구석, 눈에 띄는 제목의 작은 책이 보입니다.
 
<ㅇㅇㅇㅇ와 다른 신들>이라는 제목의 포켓북입니다.
 
……이런 책이 왜 이 서가에 있죠? 어쩐지 눈에 밟힙니다.
 
슬레타:이상하네.
(펼쳐봅니다.)
 
SANC 1D4.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78vs.58
 
2
 
크툴루 신화 기능치 +1
 
슬레타:(인상을 쓰고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이상한 책이네.
 
……갑자기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흉중에 강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동시에, 고막을 거치지 않고 뇌에 직접적으로 박히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분을 모셔야 해,
그분께 이 세계를 바쳐야 해,
태고의 혼돈이자 모든 것의 시작.
가장 위대하고 가장 삿된 존재…….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어려움성공
16vs.56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없앱니다.)
미오리네 씨는 뭐하시지?
 
미오리네:(책을 손에 들고 걸어오고 있습니다.)
왜 그래? 고개를 흔들던데.
 
슬레타:머리가 갑자기 띵해서요.
겨울바람을 너무 맞았나봐요.
 
미오리네:...독감이 덜 나은걸까.
얼른 들어가자. 어두워지겠다.
 
슬레타:네네!
 
바깥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던가요?
 
하늘 끝자락에 가물가물 걸렸던 해는 뚝 떨어졌고, 고요한 밤이 찾아왔습니다.
 
얼굴에 휘감기는 차가운 공기와 눈앞에 광활히 펼쳐진 거리는 청결합니다.
 
건물과 나무에 걸린 전구들이 반짝 빛나서 해가 걸려 있던 때보다도 훨씬 아름답게 보입니다.
 
집으로 향하던 길, 둘은 거대한 트리가 세워진 광장을 지나칩니다.
 
큰 성당의 앞 광장에 세워진 트리가 찬란한 광채를 뿜으며 여러 연인들을 불러모으고 있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지만, 내일─그러니까, 크리스마스 이브─은 이 트리를 보러 오자고 했었죠.
 
미오리네가 잠시 멈춰서는군요.
 
미오리네:저게 이 근방에서 제일 아름다운 트리래.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슬레타:아! 예뻐요.
알아봐주셨나봐요.
기뻐요!
 
미오리네:(미소를 지어보입니다.)
게다가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자정에 저 트리 앞에서,
입맞추는 연인들은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슬레타:아! 저, 저... 하고 싶어요...
미오리네 씨랑.
 
미오리네:응. 나도.
 
슬레타:헤, 헤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성공
53vs.60
 
 
……어쩐지 시선이 트리에서, 정확히는 트리의 꼭대기에 달린 유리 재질의 별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디에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옵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 음성이 마치 어린 아이가 부르는 것마냥 맑고 또한 성가대가 부르는 것마냥 지고하여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머리속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당신에게 다시금 속살거립니다.
 
그분께 가야 해. 그분을 모셔야 해.
 
모든 것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가장 추악하고 가장 외설적이고 가장 불합리하고 가장 사특하며,
 
동시에 그 무엇보다도 지고하신 존재─
 
<듣기> 판정
 
슬레타:

슬레타

Listen

보통

실패
87vs.65
 
 
???:▒▒▒▒께!
 
머리가 아픕니다. 머리가…….
 
슬레타:윽. 머리가.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성공
56vs.56
 
 
옷자락을 옭아매는 손길이 느껴집니다
 
절박하고 또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미오리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서 계속 무시하는 거야, 가자니까!
 
슬레타:...왜 그런 얼굴로.
죄, 송해요.
갈게요...
 
미오리네:...응.
(슬레타의 옷깃을 잡아서 끕니다.)
 
걸음을 재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합니다.
 
현관문을 단단히 잠근 미오리네가 신발을 벗으며 한숨을 내쉽니다.
 
슬레타:(손가락을 꼬물거립니다.)
 
미오리네:...오늘은 같이 영화 보지 않을래?
 
슬레타:아! 네. 볼래요.
저 보고 싶어요!
 
미오리네:(털썩, 하고 쇼핑백을 아무데나 던져놓습니다.)
(거실에 있는 꾸며진 트리를 만지작 거립니다.)
 
슬레타:트, 트리.
꾸며놨어요.
(쇼핑백을 정리하면서 말합니다.)
 
미오리네:(한번 슬레타 쪽을 봤다가 트리로 다시 시선을 돌리며) 같이 꾸미려고 했는데.
 
슬레타:아앗...
앗!
(눈치만 보면서)
다시 할까요?
 
미오리네:아냐, 멋지네.
(솔방울을 손끝으로 툭 건들입니다.)
 
슬레타:(기분이 풀린걸까 생각하며 짐정리를 끝냅니다.)
 
미오리네:오늘 산 스웨터, 꺼내줄래?
 
슬레타:네네!
(귀여운 공룡 스웨터를 꺼내줍니다.)
 
미오리네:(건네 받으며) 먼저 영화 보고 있어.
 
슬레타:(입어줄건가봐)
(나도 입어야하려나)
(두근두근)
 
영화 채널에서는 마침 나 홀로 집에 시리즈가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벌써 공룡 스웨터로 갈아입은 미오리네가 머그컵에 인스턴트 양송이 수프를 담아 오네요.
 
따뜻한 것을 담으면 색이 변하는 머그컵인지, 컵의 표면에 그려진 작은 하트들이 하얗게 빛납니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실패
95vs.60
 
(스웨터에 정신이 팔려있나봄)
 
그런데 순간,
 
머그컵에 그려진 모양들이 기묘하게 일그러집니다.
 
형체가 없는 무언가, 부정형의 아주 모독적이고 또 혼란스러운…….
 
SANC 0/1.
 
……머그컵은 멀쩡합니다.
 
미오리네가 왜 그러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77vs.56
 
미오리네 씨가 예뻐서요...
 
미오리네:허어?
이거나 먹어. (머그컵을 건냅니다.)
 
슬레타:앗! 네!
(따뜻한 스프를 입에 머금습니다.)
 
미오리네:(옆에 앉아 슬레타 어깨에 머리를 기댑니다.)
 
슬레타:따뜻해요.
 
미오리네:이제 머리는 괜찮아?
 
슬레타:괜찮아요. 집도 따뜻하고, 미오리네 씨도 옆에 있으니까요.
담요 가져와서 덮어드릴까요?
 
미오리네:아니, 지금이 좋아.
 
슬레타:헤,헤헤.
스웨터 잘 어울려요.
 
미오리네:...칭찬이야?
 
슬레타:칭찬이죠!
제가 좋아하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입어줬는데요!
 
미오리네:흐응.
그래? (허리를 껴안습니다.)
 
슬레타:흡! (숨을 한번 들이키다가 내쉽니다.)
그, 그으.
안아도 돼요?
 
미오리네:(한번 소리내서 웃으면서) 어떤 의미로?
 
슬레타:전부요...
 
미오리네:좋아... 와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이윽고 당신의 어깨에 툭 하는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미오리네가 당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전혀 유쾌하지 않은 방향으로요.
 
자정을 갓 넘긴 시간.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다음 영화 사이까지 잠깐의 광고가 송출될 무렵.
 
색색이는 숨소리, 휘영청 뜬 달빛과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성당의 대형 트리.
 
포근한 크리스마스 러그에 어깨에 얹힌 온기까지 혐오스러울 점이라곤 단 하나도 없는데도,
 
왜 미오리네의 숨소리가 이다지도 거슬리는 걸까요?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어려움성공
28vs.60
 
 
아주 충동적으로 미오리네의 목을 졸라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요,
 
원래 당신이 이토록 폭력적인 사람이던가요?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94vs.55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정신 차리자.
 
어쨌든 당신도 슬슬 잠들어야 할 때입니다.
 
미오리네를 침대에 데려다줄까요?
 
슬레타:(안고는 침대로 데려다 줄래요.)
 
……문득 미오리네가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잠꼬대인가요?
 
<듣기> 판정
 
슬레타:

슬레타

Listen

보통

실패
72vs.65
 
 
미오리네:……하지만 이건…… 하잖아, 아직…… 두기엔…….
 
슬레타:잠꼬대하신다.
헤헤헤.
(잠든 미오리네을 꼭 껴안고 웃고만 있어요.)
 
당신이 행복하다면 됐습니다.
 
당신은 꿈을 꿉니다.
 
당신은 종말의 한가운데에 서서 바닥을 향해 낙하하는 철골들과 꺼지는 땅과 무너지는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인간의 비명이 온 사방을 울리고, 도망치는 짐승의 다리가 깨진 바위의 파편에 베여 무너집니다.
 
죽고 쪼개진 나무들이 곳곳의 길을 막고, 마주하는 것조차 모독적인 여러 이계의 생물들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끔찍한 소리를 냅니다.
 
그리고, 둥, 둥, 하고 울리는 지옥의 북소리와 모독적이고 기형적인 피리 소리의 한가운데,
 
그 모든 것들의 중심에서 당신은 마주합니다.
 
형태조차도 불분명한 최후의 황폐함,
 
모든 멸망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중심에서 부글대며 존재할 가장 태고의 혼돈.
 
모든 모독적인 것들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태초의 근원점.
 
그런데 어째서 당신은…….
 
SANC 1/1D3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어려움성공
22vs.54
 
 
……당신은 눈을 뜹니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아침입니다.
 
희미한 미온의 햇빛이 넓은 창을 통해 들어와 방 안과 침대 위를 비춥니다.
 
적당히 선선하고 차가운 공기, 포근한 오리털 이불. 낭만적인 크리스마스 이브를 꼽으라면 손에 꼽힐 법한 장면이군요.
 
미오리네는 곁에 없습니다.
 
주방에서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먼저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슬레타:미오리네씨가... 먼저 일어나셨어!!
(서둘러 몸단장을 하고 나섭니다.)
미오리네씨!
(뒤에서 안아도 돼요?)
얍!
 
미오리네:아!?
잠깐, 슬레타! 위험하잖아!
 
슬레타:그래도...
안돼요?
 
미오리네:나참... (식탁에 그릇을 내려놓습니다.)
(몸을 돌려서 마주 안습니다.)
 
슬레타:너무 좋아요~
 
미오리네:(한번 가슴에 얼굴을 부비고 떨어지며) 밥 먹자.
 
슬레타:네에~
 
식탁에는 제법 그럴듯한 크리마스 이브의 아침이 차려져 있고,
 
주방의 창을 통해서 햇빛이 눈부시게 들어옵니다.
 
고전 캐럴들이 집안의 분위기를 환기시킵니다.
 
미오리네가 보다 만 건지 어젯밤에 미처 끄지 않고 잠들었던 건지,
 
켜져 있는 거실의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옵니다.
 
……는 여전히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밝혀져, 시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 및 제보가 필요하오며…….
 
그러나 이어지는 뉴스는 듣지 못했습니다.
 
자몽청을 식탁에 올린 미오리네가 TV를 꺼버렸으니까요.
 
슬레타:뭔가 사건이 있었나봐요.
(우물우물)
 
미오리네:그러게.
아무 일도 아닐거야.
 
슬레타:미오리네 씨가 그렇다면요.
 
……문득 미오리네의 다른 손에 들린 식칼이 눈에 들어옵니다.
 
과일을 썰다 왔나 봐요, 손에 들린 과도는 작지만 날이 잘 갈려 있어 번뜩입니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성공
38vs.60
 
 
왜 이러는 거죠? 기분이 나쁩니다.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76vs.53
 
과도 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
저 이제 토끼사과도 만들 줄 알거든요.
 
미오리네:뭐?
언제 연습했대.
자, (손잡이 쪽으로 돌려서 건넵니다.)
 
슬레타:(과도를 받고 그대로 연습했던 토끼사과를 깎아냅니다.)
후후후. 저의 비장의 한 수예요.
 
미오리네:풉, 대단하네.
 
슬레타:헤헤헤. 좋아해주실 줄 알았어요.
 
미오리네:(포크로 사과를 찍어서 가져갑니다.)
 
포크가 사과를 무참하게 푹 찍습니다. 과즙이 흘러나오는 모습이 뇌리에 꽂힙니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성공
58vs.60
 
(잘먹는구나.)
 
계속 사과를 보는 당신의 눈길에 의아했는지,
 
사과를 한번 더 찍어서 당신의 입가에 들이댑니다.
 
미오리네:먹고싶어?
 
슬레타:(고개를 끄덕입니다.) 네!
 
미오리네:(슬레타의 입에 사과를 넣어줍니다. 턱을 괴고 먹는 모습을 봅니다.)
 
슬레타:(아삭아삭)
 
미오리네:(너구리 같아.)
나중에 먹게 미리 준비 해놓을까?
칠면조랑 민스파이.
 
슬레타:같이 만들거죠?
 
미오리네:응, 도와줄래?
 
슬레타:물론이죠!
저만 믿으세요.
 
미오리네:믿음직스럽네.
 
요리를 끝내고 나니 정신 없이 오전이 지나갔습니다.
 
구울 준비를 끝낸 칠면조와 슈가파우더를 뿌린 민스파이가 냉장고 안에 들어갑니다.
 
뒷정리까지 끝마친 미오리네는 어제 다 못한 데이트를 마저 하자고,
 
자기는 먼저 씻겠다고 말하고서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욕실로 들어갑니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실패
93vs.60
 
 
미오리네가 근처에서 사라지고 나니 더더욱 확실해집니다.
 
이 모든 일이 어쩐지 꿈처럼 몽롱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서 보낸 시간에 대한 기억은 아예 날아가 있었죠,
 
마치 누군가 인위적으로 도려낸 것처럼.
 
……사실은 크리스마스 이전에도 미오리네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지냈던 게 바로 어제처럼 느껴지다가도,
 
그게 진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당신이 꾸었던 꿈 따위에 불과했는지조차 제대로 분간이 되지를 않습니다.
 
기실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너는 사실 '미오리네씨'와 보내는 성탄절 따위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네가 기다리던 건 단 하나뿐이야……
전율과 환희, 파쇄와 퇴락.
이 세계를 집어삼킬 최초이자 최후의 혼돈!
 
……미오리네가 욕실에서 나옵니다.
 
머리에 수건을 얹고 탈탈 털며 자기는 먼저 외출 준비를 하겠다고 말하네요.
 
부재에서 기인한 모든 생각들이 깨끗이 지워집니다.
 
어서 씻고 외출 준비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슬레타:저도 씻을게요!
 
미오리네:그래, 준비하고 있을게.
 
슬레타:(서둘러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갑니다.)
 
미오리네:(침실로 들어갑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공기는 어제의 것과는 또 다릅니다.
 
약간 톡 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의 공기보다 더 차가운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오후 두 시도 채 되지 않아 그런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던 거리는 조금 빛이 바래고 지쳐 보입니다.
 
분명 모든 것이 어제와 같은데도, 형형색색의 전구에 불이 들어와 있고
 
각종 장식들도 찬란한 태양빛을 반사하고 있는데도 밤에 본 것과 차원이 달라요.
 
그럼에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모두가 환영해 마지않는 주 예수 오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세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슬레타:(디비디 가게 가보죠.)
 
▶ DVD 가게
 
넷플릭스와 왓챠 따위의 구독 서비스가 비디오 시장을 말살시킨 것이 벌써 오래 전입니다만,
 
여전히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기 마련입니다.
 
미오리네가 그런 부류였었나요? 들어서자마자 바쁘게 밴드의 음반부터 찾아보네요.
 
기왕 도착한 거 DVD 하나쯤 구매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
 
<행운> 판정
 
슬레타:

슬레타

Luck

보통

실패
82vs.50
 
 
크리스마스 특선 영화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아요.
 
대신하여 구석에 박힌 슬래셔 영화 몇 편의 DVD가 눈에 들어옵니다.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실패
67vs.60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당신의 고막에 쑤셔박힙니다.
 
이 목소리는…… 당신의 것입니다.
 
슬레타:(놀라서 귀를 막습니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당신의 것이요.
 
슬레타:뭐, 뭐지?
 
SANC 1/1D2.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62vs.52
 
2
 
미오리네:(다급하게 달려옵니다.) 왜 그래?
 
슬레타:??뭔가 비명소리가...
기,분 탓인가
 
미오리네:...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거야.
 
슬레타:네... 아무 일도 없겠죠?
 
미오리네:응, 내가 있잖아.
 
슬레타:미오리네 씨는 뭐 고르셨어요?
(슬쩍 손을 잡습니다.)
 
미오리네:(마주 잡아서 깍지를 낍니다.)
네가 좋아할 만한거.
 
슬레타:(뭘까?)
 
미오리네:(다른 쪽 손으로 평범한 로맨스 DVD를 흔듭니다.)
 
슬레타:이거 유명한 로맨스 영화죠?
 
미오리네:응, 봤어?
 
슬레타:안 봤어요. 미오리네 씨랑 만난 후에 바쁜 일만 잔뜩이어서...
 
미오리네:그래? 오늘 보면 되겠네.
나도 안봤거든. 바빠서.
누구랑 놀아주느라.
 
슬레타:그럼 크리스마스 파티하고!
 
미오리네:광장에서 트리도 봐야지.
 
슬레타:맞아요!
 
미오리네:좋아, 다른 곳도 가볼까?
 
슬레타:디저트가게로 가요~
 
▶ 디저트 가게
 
짙은 원목 재질로 꾸며진 고급스러운 디저트 가게입니다.
 
향긋한 버터 냄새가 코끝을 맴돌고 분위기 있는 클래식 음악이 편안하게 귀에 스며듭니다.
 
가게 내부에서는 다양한 케이크와 쿠키, 빵, 구움과자 등을 판매하고 있어요.
 
미오리네:말했던 딸기 케이크도 살까?
 
슬레타:네네!
저 딸기 좋아해요!
폭죽도 사요!
 
미오리네:엄청 좋아하네.
알았어, 사자.
 
슬레타:홀케이크로 살까요?
며칠동안 나눠먹어도 좋아요.
 
미오리네:며칠 내내 먹으면 질려버릴걸?
 
슬레타:이틀이면 먹지 않을까요?
 
미오리네:그렇게 금방?
케이크만 먹을려고?
먹어야 될게 많은데.
 
슬레타:(흘끗 미오리네를 보고는)
그러게요.
 
미오리네:(옆구리를 살짝 찌르며) ...색마.
 
슬레타:에헤헤.
 
미오리네:홀케이크로 할게.
 
슬레타:네에~
 
디저트 가게를 나온 슬레타는 길가에 떨어진 신문을 한 부 발견합니다.
 
슬레타:(신문을 붙잡습니다.) 엇차.
 
바닥에 나뒹구는 신문의 1면에는 대문짝만한 속보가 적혀 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요. 왜 이러는 거죠?
 
<정신력> 판정
 
슬레타:

슬레타

Power

보통

실패
69vs.60
 
 
왼쪽 구석에 적힌 기사가 또렷이 눈에 들어옵니다.
 
기상청은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릴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보도를 내놓았습니다.
 
과연 이번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수 있을까요?
 
슬레타:분명 눈이 온다고 했지?
눈사람도 만들어야지~
 
미오리네:뭘 주워서 보고 있는거야. (신문을 뺏습니다.)
 
슬레타:크리스마스때 눈이 온다는 거요.
 
미오리네:(뺏어간 신문을 눈으로 훑습니다.)
...그래?
잘됐네.
 
슬레타:그렇죠?
 
▶ 액세서리 가게
 
고급스러운 흰색으로 꾸며진 액세서리 가게의 내부, 은은한 조명이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들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빛납니다.
 
가격대가 좀 있어 보이지만 크리스마스를 맞아 세일 중이라고 하니 잠깐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습니다.
 
슬레타:(그렇지만 반지는 샀으니까요)
둘러보기만 할까요?
 
미오리네:그래, 시간도 있으니까.
 
슬레타:악세사리가 많네요.
반지는 물론 목걸이도 있고.
 
미오리네:어제의 가게보단 가격대가 있네.
 
슬레타:전문점이라 그럴까요?
 
미오리네:(목걸이를 하나 들어서 봅니다.)
 
슬레타:붉은 보석이네요.
 
미오리네:그러네.
네 머리색 같아.
 
슬레타:이거랑 세트인게 흰색 보석이에요.
 
미오리네:이거도 맞춰서 할까?
 
슬레타:(끄덕끄덕)
 
미오리네:네가 흰색으로 해.
 
슬레타:네네!
 
가게를 나오니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슬레타:날이 많이 어두워졌어요.
 
과연, 날이 어두워지고 나니 아름답던 거리가 되살아납니다.
 
미오리네:감기 걸리겠다.
 
슬레타:꽉 여며주려구요?
 
미오리네:너 어디서 그런 거 들었어.
 
슬레타:으음~ 누구에게려나요~
 
미오리네:참나, (작게 소리내 웃으며 슬레타 코트를 꽉 여며줍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걸맞는 생명력이 거리를 찬란하게 비춥니다.
 
오늘은 둘이 집에서 크리스마스 이브의 만찬을 즐기기로 한 날이고,
 
거리들은 마치 그런 둘의 오붓한 계획을 축복하듯 찬란하게 빛납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던 길, 문득 전례 없는 이질감이 느껴집니다.
 
당신은 이 느낌을 잘 압니다. 무언가 아주 중요한 걸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사람이 으레 겪곤 하는 그런 감정.
 
그러고 보니, 미오리네가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작성해뒀던 포스트잇에 무슨 내용이 있었죠?
 
<지능> 판정
 
슬레타:

슬레타

Intelligence

보통

어려움성공
13vs.55
 
(키스!)
(미오리네 씨랑!)
 
이로보케.
 
어글리 스웨터 입기, 완수. 구움과자 먹으러 가기, 완수.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 혼자서 했죠. 나 홀로 집에 보기, 완수. 민스파이 굽기, 완수. 캐럴 틀어두고 밤새 놀기, 어제 대충 완수한 걸로 칩시다. 겨우살이 아래에서 입맞추기…… 이건 하면 되고, 자정에 집 앞 광장에 나가기, 이것도 하면 되고, 분명히……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 먹기가 적혀 있지 않던가요?
 
슬레타:(에에...?)
(키스...)
 
확실해요, 레스토랑에도 가겠다고 했었잖아요.
 
귀갓길에는 다양한 음식점이 있습니다.
 
고가의 파인 다이닝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인도 음식 전문점, 터키 음식 전문점, 패스트푸드 전문점과 제과점까지.
 
통상적인 저녁 시간을 약간 빗겨나갔으니 자리도 충분히 있을 거예요.
 
게다가 내일은 크리스마스가 아닙니까, 크리스마스에는 분명 모든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을 겁니다.
 
……레스토랑에 가겠다는 생각을 잊어버린 걸까요,
 
아니면 금세 생각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요?
 
슬레타:(그, 그렇구나. 기억이 날 거 같아요.)
 
키스에 정신이 팔려 더 깊게 생각이 이어지지 않네요...
 
슬레타:(아무래도요...)
 
마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젯밤 지나쳤던 트리의 근처를 걷는 당신의 시야에 누군가 밟힙니다.
 
이 추운 겨울에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비척대며 성당에서 걸어나오는 사람이 보입니다.
 
중년의 여자는 몇날 며칠을 제대로 잠들지 못한 것처럼 안색이 퀭하고 입술이 버석거립니다.
 
……그러고 보면 슬레타의 어머님께서 꼭 저 정도 나이가 되셨을까요,
 
유령처럼 귀신처럼 발소리 없이 걸어나오는 여성은 굉장히 지쳐 보입니다.
 
슬레타:(엄청 피곤해보이셔)
 
<관찰>해볼 수 있습니다.
 
슬레타:

슬레타

Spot Hidden

보통

성공
49vs.65
 
 
세월이 스쳐 지나간 얼굴에서 거대한 슬픔이 엿보입니다.
 
……당신은 저런 표정을 잘 압니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이 저런 얼굴을 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나서 채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한 자,
 
이토록 잔인하고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자의 낯.
 
미오리네:...뭐해? 안가고.
 
슬레타:아, 네! 갈게요. (신경쓰이시는 사람이 보인다곤 말을 못합니다.)
 
미오리네:그래. (힘줘서 집 쪽으로 이끕니다.)
 
슬레타:(그대로 딸려갑니다.)
 
둘은 문을 열고 다시금 둘만의 포근한 집안으로 들어섭니다.
 
……아뇨, 전혀 포근하지 않군요.
 
난방을 꺼놓고 나갔었던가요, 집안을 감도는 공기가 으슬으슬 차갑습니다.
 
불이 다 꺼진 집안, 여전히 아무런 장식도 없이 초라하게 서 있는 트리, 멈춘 크리스마스 캐럴과 부스럭대는 쇼핑백과 당신과 미오리네.
 
사이의 어색한 정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빛바랜 크리스마스 이브.
 
슬레타:어라...? 저희 난방 끄고 나갔나봐요.
 
미오리네가 온 집안의 불을 켜고 난방을 틀고 캐럴을 틉니다.
 
내던져진 쇼핑백이 덩그러니 바닥에서 구릅니다.
 
슬레타:(쇼핑백을 주섬주섬 챙겨요.)
(추우셨나봐)
 
……허둥거리는 미오리네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슬레타:...?
(케이크를 냉장고 안에 넣습니다.)
미오리네 씨, 다 하셨어요?
그렇게 급하게 안하셔도 돼요.
 
미오리네:아냐, 시간이 얼마 안남았잖아.
 
슬레타:자정까지요?
 
미오리네:해야할 게 많은걸.
 
슬레타:그럼 이끌어줘요.
따라갈테니까.
 
미오리네:(한번 한숨을 푹 쉬고) ...좋아. 그럼,
(노래를 신나는 걸로 바꿔서 틉니다.)
아까 준비한 칠면조나 구워볼까.
 
슬레타:네네!
통으로 구을거죠?
 
미오리네:크리스마스 파티 해야지.
맞아. 구워줄래?
잠깐, 할 일이 있어서. 조리 하고 있어줘.
 
슬레타:(칠면조를 들고 양념할 준비를 합니다.)
 
미오리네:(침실로 들어갑니다.)
 
슬레타:칠면조 구이~
버터랑 채소랑, 소스랑.
오븐에 구워야지.
남은 건 내일 샌드위치에 껴서 먹어야겠다.
 
침실 쪽에서 조그맣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슬레타:(미오리네 씨는 뭐하시는걸까?)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쪽 빨아먹습니다.)
자, 끝!
(미오리네 씨 안오시나?)
 
미오리네:(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옵니다.)
다 됐어?
 
슬레타:네!
 
미오리네:아까 사온 케이크 조금만 잘라서 줄래? (식탁에 앉습니다.)
 
슬레타:물론이죠!
(홀케이크를 꺼내서 딸기가 많은 부분을 잘라서 미오리네의 앞에 줍니다.)
 
미오리네:딸기를 이렇게 많이 주면, 너는?
 
슬레타:저는 미오리네 씨가 먹는 걸 보면 충분해요.
 
미오리네:...이쪽으로 와 봐.
 
슬레타:...? 네~
 
미오리네:(딸기 하나를 입에 넣어줍니다.)
 
슬레타:헤헤.
 
미오리네:맛있어?
 
슬레타:네에.
 
미오리네:(손가락으로 케이크의 생크림을 떠서 슬레타 입가에 묻힙니다.)
 
슬레타:어?
 
미오리네:(그대로 입가를 훑다가 입술에도 생크림을 묻힙니다.)
...크림은 맛있어?
 
슬레타:(할짝 핥고는) 너무 적어서 잘 모르겠어요.
(몸을 숙이고는) 좀 더 줄래요?
 
미오리네:(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습니다.)
(포크로 케이크를 잘라서 입에 넣어줍니다.)
만족하지?
 
슬레타:(우물거리며) 저만 먹어요?
 
미오리네:나도 먹고 있잖아.
(슬레타를 쳐다봅니다.)
 
슬레타:왜 케이크만 먹어요?
나는요?
 
미오리네:...칠면조가 타버리면 어쩌려고 그래.
 
슬레타:제가 타이머 잘 맞춰뒀어요.
 
미오리네:(생크림을 제 입술에 묻힙니다.)
...케이크 더 먹을래?
 
슬레타:네.
 
삑.삑.삑.
 
타이머가 울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슬레타:짭.
꺼내고 올게요~
 
미오리네:하아...
(허리께를 주먹으로 툭툭 치면서 일어납니다.)
(주섬주섬 홈웨어 바지를 입고 식탁에 앉습니다.)
 
슬레타:잘 구워졌네요. 이대로 먹어도 되겠어요.
 
미오리네:응, 맛있어 보이네.
고마워.
 
슬레타:많이 드세요!
 
미오리네:너나 많이 드세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창밖에 다시금 완연한 흑색이 내려앉았습니다.
 
못생긴 공룡 스웨터를 입고 캐럴을 들으며,
 
전구와 솔방울 장식을 휘감고 휘영청 반짝이는 트리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미오리네가 당신의 손을 잡아끕니다.
 
미오리네:곧 크리스마스야, 슬레타.
밖에 나가서 광장에 선 트리를 보자.
 
슬레타:멋질거에요!
 
지금은 밤 열한 시 하고도 십 분.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나기까지,
 
그리고 크리스마스까지 앞으로 오십 분이 남았습니다.
 
밤입니다.
 
광장까지 딱 이십 분이 걸렸고,
 
크리스마스까지 딱 삼십 분이 남았습니다.
 
도달한 광장의 트리는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길을 가던 연인들마저 멈춰서서 하염없이 트리를 쳐다보며 소원을 빌 정도로,
 
당장에라도 썰매를 탄 산타가 지나치는 모습이 보일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미오리네,
 
당신의 옆에 서서 당신의 손을 꽉 잡은 미오리네는 트리 아닌 당신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트리에 걸린 색색의 전구가 뿜는 빛,
 
그 빛들이 당신의 얼굴에 난반사되는 모습을,
 
당신의 얼굴 가장자리를 타고 빛무리가 지는 모습을.
 
마치 아주 귀중하여 어딘가에 꼭꼭 감춰두고 싶은 것을 목도하는 것처럼,
 
동시에 아주 슬프고 당장에라도 끌어안고 싶은 것을 마주하는 것처럼.
 
슬레타:왜 그런 얼굴이에요?
크리스마스에는 웃어야죠.
이렇게 같이 있는데.
 
미오리네:...그러네.
(입만 웃어서 보입니다.)
 
슬레타:이번년도도 슬슬 끝나가네요. 그래도 미오리네 씨랑 함께여서 좋아요.
크리스마스 이브도, 당일도, 내년에도 함께겠죠?
 
미오리네:당연하지.
어디 가버리면 가만두지 않을거니까.
 
슬레타:그렇게 되기 전에 계속 잡아주세요.
 
미오리네:(슬레타의 허리를 껴안고 가슴께에 얼굴을 묻습니다.)
 
슬레타:좋은 냄새.
 
미오리네:(허리를 껴안던 손으로 슬레타의 등을 한번 칩니다.)
 
슬레타:윽.
 
미오리네:바보.
 
슬레타:(똑같이 안아줄게요.)
 
이렇게 로맨틱하고 이상한 크리스마스가 또 있을까요.
 
정말 이상한 크리스마스였습니다.
 
병원 같지도 않은 병원에서 영문도 모른 채 탈출하고
 
병원에서의 일주일의 기억이 전부 날아가고,
 
미오리네는 자꾸만 무언가 숨기는 것처럼 굴고 신문의 글자들이 잘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가끔 미오리네를 저주하는 말들도 들리던,
 
차라리 모두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던 크리스마스.
 
그럼에도 지금의 분위기는 마치 그 모든 이질감을 보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낭만적이기 짝이 없습니다.
 
문득 미오리네가 입을 엽니다.
 
미오리네:사실, 계속 이렇게 있고 싶었는데…….
 
목소리에 고인 슬픔의 총량을 차마 다 짐작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미오리네도 이상합니다.
 
왜 크리스마스를 즐긴다면서 내내 저런 표정이었던 걸까요.
 
왜 아주 슬픈 것을 마주한 자의 얼굴을 하고,
 
너무나 간절히 바라서 너무나 간절히 믿고 싶어하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그런데 생각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당신과 미오리네의 뒷덜미를 누군가 잡아챕니다.
 
슬레타:으엇!
 
헬멧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스무 살은 됐을까요,
 
앳된 얼굴의 경찰 한 명이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당신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SANC 1/1D2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77vs.50
 
2
뭐하시는 거에요!
 
산 사람에게 총을 겨눠보는 건 처음인 걸까요?
 
……몇 번씩이나 진동하는 총구를 바로잡은 채 경찰이 말합니다.
 
경찰: 슬레타 머큐리, 미오리네 렘블랑. 당신들을,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이 세계의 멸망을 꾀한 죄로 체포합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죠?
 
SANC 0/1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72vs.48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저흰 그런 적 없는데?!
 
경찰은 당신에게 무어라 말할 틈조차 주지 않고 새된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경찰: 본래 체포하여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맞으나, 현재 성탄절이 5분도 채 남지 않았으므로
세계의 안녕을 위하여 슬레타 머큐리 당신을 즉결처분하겠습니다.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슬레타:미, 미오리네 씨!
 
총구가 올곧게 당신의 머리를 향하고,
 
……그러나 울린 것은 발포음 아닌,
 
미끄러진 권총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입니다.
 
눈앞의 경찰이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쓰러집니다.
 
슬레타:....어?
 
그리고, 그 뒤에는…… 주사기를 들고 있는 미오리네가 있습니다.
 
슬레타:....산건가? 잠, 잠깐만요.
미오리네 씨 그건.
 
미오리네는 한참 말이 없습니다.
 
슬레타:저 사람이 한 말 뭐예요?
이상해요!
이런 거!
 
눈물 잔뜩 머금어 일그러진 표정이 처절합니다.
 
제 자신보다 한 명의 인간을 더 소중히 여긴 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습니다.
 
미오리네:슬레타, 미안해...
 
슬레타:아니, 아니에요.
울지 마세요.
 
미오리네:...수면마취제니까, 죽진 않았을거야.
 
슬레타:저, 저희 도망가요...
 
미오리네:...어디로?
 
슬레타:(뒤죽박죽이 된 머리를 정리못하고) ...아, 그, 그러니까.
 
미오리네:(슬레타의 팔을 힘줘서 잡습니다.)
네가 죽지 않으면... 세상이 멸망해.
 
슬레타:무슨, 소리에요?
 
미오리네:넌... '샨'이라는 외계 종족에게 잠식 당했어.
크리스마스에 무언가를 소환해서 세상을 멸망 시키려 했어.
...그래서 전 세계에서 셋을 잡아낸 후 죽이려고 했고,
이미 둘은... 죽었어.
 
슬레타:제가 마지막...이에요?
 
미오리네:...그래.
차마 네가 그렇게 죽는 꼴을 보지 못하겠어서,
방법을 찾으려고 빼왔어.
 
슬레타:미오리네 씨를 두고 가고 싶지 않아요.
 
미오리네:...방법을 찾아서, 틈틈히 제조했는데.
반쪽짜리 약 밖에 만들 수 없었어.
알고 있었는데도... 세상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 넣었어. 내가, ...
 
SANC 1D3/1D5
 
슬레타:

슬레타

Sanity

보통

실패
99vs.47
 
4
 
크리스마스 이브의 바람이 차갑습니다.
 
이질감의 정체가 밝혀지고 한 세계가 무너진 이후에도,
 
이 모든 절망과 멸망의 앞에서도 시간은 여전히 잘만 갑니다.
 
약간 비릿하고 씁쓸한, 눈물 냄새가 나는 겨울 바람이 당신의 뺨을 간질입니다.
 
이윽고는 콧잔등에 희고 찬 것이 내려앉고,
 
*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이 박힌 맑은 하늘에서 크리스마스 이브가 끝나기까지 고작 오 분을 남기고,
 
턱에 고여 몇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처럼 눈송이가 뚝뚝 떨어집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입니다.
 
*
 
미오리네가 당신에게로 다가옵니다.
 
생명줄 잡고 매달리는 환자마냥 당신의 손을 꽉 잡습니다.
 
마치 사형 선고 내려진 죄인처럼 처절한 낯을 하고.
 
광장 앞 성당에서 성탄절을 알리는 노래가 오르간 반주에 맞춰 울려 퍼집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결국 알아버립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마지않는 일.
 
오로지 당신에게만은 숨기고 싶어했던 세상과 미오리네의 가장 내밀한 비밀.
 
*
 
지금은 고요하고도 또 거룩한 크리스마스 전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당신의 죽음을 간절히 바랍니다.
 
미오리네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한채, 슬레타의 턱에 입맞춤을 합니다.
 
그러곤 떨어져서 챙겨온 가방을 꺼내듭니다.
 
가방 안에는 주사기 두개가 액체가 가득 찬 상태로 잠들어있습니다.
 
미오리네:(손으로 가리키며) 이쪽은... 내가 만든, 반쪽자리 약.
(다른 쪽을 가리키며) 이쪽은... 안락사 약이야.
 
슬레타:(훌쩍.)
 
미오리네:아무런 임상실험도 거치지 못했고, 부작용도 몰라.
 
슬레타:(훌쩍)
 
미오리네:슬레타, 네가 정해줘.
 
슬레타:저, 저는... 죽고 싶지 않아효오... 미오리네 씨랑 내년 크리스마스에도 같이... 훌쩍 살고 싶었는데 훌쩍.
겨, 결혼도 못했는데에.
 
미오리네:...나도, 같아.
...결혼, 하고 싶었어.
(한번 눈을 꾹 감았다가 뜹니다.)
...어떻게 하고 싶어?
네 선택에 따를게.
 
슬레타:훌쩍, 제 선택...
저, 저...
반쪽이라도...
근데... 아플 거 같으니까.
키스해줘요.
훌쩍
 
미오리네:슬레타, 고마워.
날 믿어줘서...
(주사기를 들고 슬레타의 목을 감싸안습니다.)
(이미 눈물에 젖은 입술을 슬레타의 입술에 부빕니다.)
 
슬레타:흐응...
 
그대로,
 
주사기를 슬레타의 목에 꽂아 넣습니다.
 
...정신이 흐려집니다.
 
시선의 마지막에 보이는 미오리네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주의 부모 앉아서
 
감사 기도 드릴 때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
 
이로써 세상은 안전합니다.
 
인류는 당신에 의해 이번 크리스마스를 잃었지만 당신을 통해 다음과 그 다음
 
그리고 또 그 다음의 크리스마스를 얻었고……
 
그 크리스마스에 당신의 자리가 있을까요?
 
이 고요하고도 거룩한 밤의 세상에 설 자리가 남아있을까요.
 
밤이 깊고, 내리는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지켜낸 세계와 타인의 삶은,
 
광막하고 고요한 성탄의 밤은 처절하고 아름답습니다…….
 
뎅, 뎅. 성당에서 자정 알리는 종이 울립니다.
 
주 예수 나신 밤을 기리는 종소리가 열두 번 울리고,
 
고요한 성탄절이 도래합니다.
 
슬레타, 메리 크리스마스.
 
슬레타 ???, 미오리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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