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그림의 저작권은 케피(@KEPY_0404)에게 있습니다.
- 연성교환 및 커미션 작업물은 샘플 및 포트폴리오에 공개될 수 있습니다.
'인외 / 짐승 / 강압적성행위 / 후타나리 / 로맨스코미디' 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후타나리 백합 샘플 뿐이지만, 헤테로/BL도 가능합니다.
인외x인간/근친/골든/동물화/네크로필리아/고어/임신출산(육아는X) 등등 이상성욕글을 쓸 수 있습니다.
어둡고 시리어스한 분위기도 신청주시면 노력합니다.
공포 1,000자당 1.5 / 최대 마감 기한 1달 / 완성본은 pdf 파일로 전달합니다.
비공개 추가금 +0.5
이외 샘플은 아래의 링크 무료 공개본(구매XXX)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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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기반(소설, 만화, 영화 및 드라마) 특수 설정이 포함된 세계관(AU, ~~버스)의 경우에는 해당 세계관의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원활한 작업을 위해 자세한 설명 혹은 자료를 제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1차 후타나리 백합 (선장x부관 욕조 플레이)
인세인 :: 사르가소의 유령 스포일러가 다수 있습니다. 엔딩 후 보길 추천합니다.
스포일러 때문에 쿠션 링크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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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성의 마녀 슬레타x미오리네 (타우로스 수인x메이드)
네가 할 일은 이제부터 하나야.
이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 하나뿐인 네 아기씨를 모시는 일이지.
그것만 해낸다면 네 성(姓) 위에 얹혀진 죄의 무게가 사라질 거야.
LS001, 부디 아껴온 그 몸을 잘 사용해보길 바래.
귓가에 징징 울리는 이질적인 소음을 밀어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말투.
□□ 와도 같은 □□의 명령.
…덜컹-.
손을 올려 풀리지 않는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승강기에서 내렸다.
몇 번을 올랐다 내려온 곳이지만 정말이지 조용한 공간이다.
지하라고 느껴지지 않듯 어딘가에서 내려오는 빛은 이곳을 지상이라 착각하게 만든다.
공간을 뚝 잘라 만들었다 생각되는 이곳에 나의 아기씨가 잠들어 있다.
다다닥!
“미오리네 씨!”
한 인형이 어둠속에서 튀어나와 폭 하고 안겼다.
“계속 기다리신건가요? 매주 이 시간에는 올라가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그, 그래도! 혼자는 외로우니까요….”
이곳의 아기씨, 슬레타.
태어나서 줄곧 이곳에서 살아왔기에 조금만 옆을 떠나도 이런 반응을 보인다.
어쩔 수 없지. 이런 몸이라면….
깜빡- 그녀와 부드럽게 눈인사를 나눴다.
슬레타는 바깥사람들이 말하는 일종의 반인반수.
하반신은 사자, 상반신은 인간 여성의 형태를 띠었다.
열다섯 정도의 체격을 가졌지만, 실제 살아온 햇수를 세 본다면 스물은 되고도 남았다.
아마 인간과 성장 속도가 다른 것이겠지.
“아기씨도 참. 어리광쟁이시네요.”
“미오리네 씨는 나를 받아주니까. 기뻐서 그만….”
“흠, 그건 그렇고 오늘은 그날이죠?”
“…….”
또 아무 말 없이 눈을 또록 굴린다.
“눈 피하지 마세요! 목욕날이시잖아요. 또 밖에서 이렇게 굴러다니시면서 안 씻는단 소린 아니겠죠?”
“으으!”
아직도 물을 싫어하긴.
잔뜩 말린 꼬리 윗부분을 손으로 통통 치며 슬레타와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있잖아요, 미오리네 씨는 왜 저를 이렇게 아껴주시는 거예요?”
똑…똑….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져 소리를 냈다.
“또 그 소리세요? 말했잖아요. 아기씨가 제 아기씨기 때문이죠.”
그거야, 네가 내 주인의 딸이니까.
둥둥 떠오른 속마음을 따뜻한 물에 휘저어 슬레타의 몸에 쏟아냈다.
“…사실 말이에요. 그날 저희 처음 만날 날 말이에요. 저는 꿈을 꾸는 줄만 알았어요.”
“아기씨가 절 보고 신부님이라고 한 거 말이에요?”
“네, 네! 맞아요. 미오리네 씨…. 하얀 천에 싸여있었잖아요. 정말 신부님인줄 알고 둥지에서 하루 종일 품고 있었거든요.”
그날은 주사를 맞고 정신을 잃었었다.
“신부라… 물은 괜찮으시죠?”
할 말을 찾지 못해 말을 돌렸다. 신부라니 주인님이 들으면 코웃음을 쳤겠지. 노예가 누굴 탐하냐면서. 해봤자 노리개가 아니겠어? 이렇게 말이다.
“아, 네에…. 미, 미오리네 씨 이제 와 주세요. 밖은 추우니까요.”
고개를 끄덕이곤 몸에 걸친 것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옅은색의 나신을 슬레타에게 보여준다. 이 아이 나의 이런 모습을 좋아했다.
“너무 예뻐요…. …제, 제가 자리 만들어 놓을게요!”
한참을 보던 슬레타는 제 긴 몸을 옆으로 동그랗게 구부려 공간을 만들었다. 물에 들어가자 바로 얼굴을 붉히더니 두 손을 꼼지락댔다.
“이리오세요. 원하는 게 있으시죠?”
그 말에 슬레타가 몸을 바짝 붙여왔다.
알고 있다. 언젠가를 기점으로 점점 더 노골적으로 내 몸을 원하고 있다.
스물. 인간의 나이로는 늦지만 사춘기였다.
인간 여자의 몸에 관심이 많겠지.
손을 물속에 깊이 넣어 슬레타의 하반신을 건드렸다. 생각한 대로였다. 발기했네….
“읏, 으응… 좀 더요….”
슬레타가 어리광을 부려오며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가슴을 찾는 모양이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지 가슴은 찾는데 제대로 빨지는 못한 게 흠이었다.
“아기씨, 거기가 아니라 여기예요.”
얼굴을 옮겨 젖을 물렸다. 아기씨는 아기가 된 것마냥 급하게 젖을 빨았다. 이런다고 진짜 젖이 나올 리 없는데 말이다.
날카로운 이빨이 닿지 않도록 영악하게 혀를 움직이는 것이 사람을 애태우게 만든다.
그럼 이쪽도….
“그럼 시작할게요.”
젖을 빠는데 신경을 쏟느라 제대로 듣지도 못하는듯했다. 어쩔 수 없지.
물속에서 커진 슬레타의 자지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인간과 다르게 귀두에 돌기가 나 있어 만지는 맛이 있다.
귀족이었기에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기에 사춘기에 들어선 슬레타를 간단하게 만족시킬 수 있었다.
돌기부터 매끈한 뿌리까지 단번에 쓸어내린다. 털이 난 부분을 빠듯하게 쥐고 흔들자 슬레타의 입에서 비음이 흘러나온다.
어리긴 해도 역시 짐승의 성기. 곧 어른의 것처럼 발갛게 부풀어 올랐다.
저만한 것을 받아낼 수 있을까? 성교육으로 배웠던 것을 급하게 떠올리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 실전은 다르겠지.
이렇게 다 벗은 상태로 맞이하는 건 처음이라 긴장에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이번에도 손으로만….
“미오리네 씨… 저 아래… 간지러, 워요. 어, 쩌지… 아, 이 위에 앉아주세요.”
슬레타가 안절부절 못하다 몸을 뒤집는다. 붉은 성기가 그대로 노출됐다. 슬레타가 원하는 대로 그 위를 깔고 앉았다. 그 순간, 깨깽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정액이 뿜어져 나왔다.
어라…? 벌써?
“하아… 하아… 미, 흐윽 오리네 씨이….”
“괜찮아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익숙지 않아서 그런 거죠. 이렇게 하고 싶었죠?”
음부로 슬레타의 자지를 쓸었다. 돌기가 클리토리스에 닿아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오돌토돌한 귀두가 클리토리스, 소음순을 거쳐 회음부에 닿았다. 물과 음모를 헤치는 감각에 슬레타는 침을 질질 흘리며 앞다리로 내 골반을 붙잡았다. 그 뒤는 본능이 해결해준다.
넣지는 않았지만 자극은 충분했다. 슬레타의 자지는 다시금 빳빳하게 고개를 내밀고 내 몸을 눌러댔다. 마지막까지 해줘야할까 고민할 찰나 돌기를 세운 귀두가 질구로 쑥 들어왔다.
“으, 읏….”
급작스러운 상황에 두 사람의 입에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돌기는 질내로 들어와 빠지지 않겠다는 듯 자존감을 드러냈다. 끝만 들어왔는데도 빠듯했다. 이게 전부 들어온다면… 따뜻한 물속에 있는데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미, 오리네… 씨. 들어갔… 어요. 이거 안 빠지…. 읏, 허억….”
“…아기씨, 이건….”
손으로만 해주려고 했다가 저지르고 말았다. 생각보다 이른 몸시중을 들게 생겼다.
“아기씨, …이제부터 제가 시키는 거 잘 따라하세요.”
귀족 노예는 꽤나 가치가 있었다. 그걸 안 노예상은 내 처녀성을 유지시키려 노력했었지.
다만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곳에 무언가 밀어넣기란 어떤 것도 쉽지 않았다.
“으읏… 이대로 위로… 박아주세요. 천천히… 제 여기가 아기씨를 받아들이고 있죠?”
“하읏, 미오리네 씨….”
산도를 긁고 올라오는 이질감에 순간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다. 그게 내가 이곳에 팔려온 이유. 나는 아기씨의 노리개역이니까.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안개가 낀 것 같은 몽롱함을 떨쳐냈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야. 슬레타에게 집중하자.
자지를 더욱 안쪽으로 밀어넣다보니 딱딱한 끝에 맞닿았다. 배를 만져보니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하아… 하아… 아, 아기씨 제 안쪽 기, 기분 좋으세요?”
“으응… 좋아요. 끝에 딱딱한 게 닿았어요.”
“읏, 그거. 아기씨께서 잘 하신 증거예요….”
찰박찰박, 움직임에 따라 탕의 물이 흔들린다. 흘러나온 체액은 물에 섞여 둘의 몸을 적셔나간다.
수증기로 꽉 찬 욕실에 짧은 비음만이 울려퍼졌다.
“아, …으앗!”
“…훗, 훗, 으윽….”
내 아기씨를 기분 좋게 만들고 싶었다. 덜덜거리는 팔로 슬레타의 아래에서 몸을 흔들었다.
묵직한 슬레타의 자지가 여린 산도를 정신없이 범하며 긁고 지나갔다.
뜨겁고 저릿한 감각에 자꾸만 자지러졌다.
“아앗. 앗! 슬레타아…. 아기씨. 아앙! 거, 거기. 좀더어.”
아랫도리가 잔뜩 부어올라 제 것이라는듯 슬레타를 잔뜩 물어 삼켰다.
갈 곳 잃은 두 손을 허우적대자, 슬레타가 강하게 그것을 붙잡았다. 자극을 참지 못해 일그러진 표정에는 사나운 맹수의 얼굴이 얼핏 보였다.
“이름… 이름으로 불러줘요. 아기씨 말고.”
“읏… 안돼요… 아기씨는….”
“슬레타예요….”
갑작스레 느껴지는 강한 자극에 몸을 바르르 떨었다.
슬레타가 바르작거리며 자궁입구를 간지럽힌 것이다.
“아, 아기… 아읏!”
“이름 불러줘요….”
“슬레타아… 슬레타아…!”
슬레타의 얼굴에 희열이 느껴졌다.
“헉헉… 미오리네 씨, 저 또 뭔가 올라와요…! 오줌 싸버려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였다. 씨를 발산한다는 본능에 하체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흐읏… 안에 싸면…!”
꽈악, 짐승의 손이 엉덩이를 붙잡았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멍이 들것만 같았다.
슬레타는 굶주린 짐승처럼 아래가 빠지도록 박고 또 박았다. 이러다간 정말로 자궁이 딸려나올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자, 아랫배가 연신 신호를 보냈다. 이상한 감각에 슬레타에게 멈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된 단어를 내보내지 못했다.
“아, 아앙…! 그, 으앗! 응응! …만!”
울컥울컥! 안쪽에서 진득한 액체가 뿜어져 자궁을 두드렸다. 슬레타, 내 아기씨는 사정의 흥분 때문인지 혓바닥을 길게 빼 개 마냥 헥헥거렸다. 그 모습이 마냥 귀여워보였던 걸까. 박힌 몸을 쭉 빼 입을 맞춰줬다.
작은 혀로 날카로운 이빨을 쓸어내리자 기쁘다는 듯이 달라붙어오는 모양새가 퍽이나 어린애 같았다.
“잘 싸셨어요, …아기씨.”
슬레타의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을 닦아내며 말하자, 그 아이는 볼을 잔뜩 부풀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슬레타랬잖아요. 그리고 어른이시니 …반말 써도 돼요.”
노예인 내가 너에게 그래도 되는 걸까…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알았어… 슬레타.”
목욕물이 더럽혀졌다.
이런 물로는 슬레타도 나도 제대로 씻을 수 없다.
새로 물을 받을 수밖에.
▶ 수성의 마녀 슬레타x미오리네 (오메가버스, 후타나리 백합)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했어.
삑삑 울리는 시끄러운 경보음을 끄고 둥둥 떠다니는 물건들을 끌어 내렸다.
억제제… 억제제. 응급키트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부웅-, 흔들리는 탈출포드에 중심을 잃고 벽으로 튕겨 나간다. 다칠 위기에서 저를 구한 것은 같은 포드에 타 있던 슬레타 머큐리 대령.
“크읏…. 머, 머큐리 사령관 괜찮아요?”
“헉, 읏… 저는 괜찮으니 빨리….”
그는 페로몬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기 위해 노멀슈트를 입고 있다.
그렇다. 이 사람은 지금 강제 러트사이클에 휩싸여 있다.
몇 시간 전, 물자를 사러 상업플랜트로 갔던 게 화근이었다. 하필이면 과거 내가 몸담고 있던 조직의 적대세력이 이곳에서 세를 불리던 중인데다 내가 누구였는지 알아본 조직원이 나를 죽이려 움직였다.
사방이 폭탄과 탄약에 터지던 중 저를 구하겠다고 머큐리 사령관이 몸을 날렸고,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다치지는 않았지만, 도주로에 있던 불법 페로몬 시설에 노출당해 이 모양 이 꼴인 상태.
다행히 테러에 대비한 탈출포드가 존재한 덕분에 우리는 그것을 타고 우주 한복판에서 이렇게 유영 중이다.
“후욱…, 후….”
그렇다 해서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아까부터 계속 찾아봤으나 페로몬에 대비한 그 무엇도 이 탈출포드에 존재하지 않는다. 러트인 알파와 짝이 없는 오메가. 사고가 나기 딱 좋은 환경. 무엇 하나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머큐리 사령관, 우선 대대로 연락을 취하죠…. 이러고 있으면 언제 추적당할지 모르고.”
“후우…,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탈출 워프, 시스템을 만져놔서… 후우, 추적은 힘들, 겁니다….”
“…그거 당신이 한 거였군요.”
어쩐지 들어오자마자 무언가 잔뜩 만지더라니…. 워프 멀미인지 아까부터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모아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사령관, 무슨 좋은 생각 있으신가요? 그 노말슈트 계속 입고 있을 순 없잖아요.”
“이 정돈 참을 수 있습니다.”
“아뇨, 제가 해봐서 알아요.”
“…….”
탈출한답시고 노말슈트만 입고 우주에 뛰어든 적이 있었지. 이제는 그러지 않지만.
“그러면 제일 효율적인 방법을 쓰죠.”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뻔하죠. 저희 둘이 한 번 하고 끝내는 거죠. 아시다시피 전 그런 쪽에서 일했으니-”
“안, 돼요. 그럴 순… 없어요.”
“여기서 규율을 이야기하시는 거면.”
“규율 때문이 아닙니다. 미오리네 렘블랑. 자신의 몸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흥분한 것인지 머큐리 사령관의 헬멧 앞부분에 김이 서렸다. 분명 우리는 그런 약조를 했다. 환경에 의해 발생한 무지는 사람을 새장 속의 새처럼 만들어 버린다고. 새장을 탈출한 이상 더 많은 것을 알고 느끼고 배워야 한다며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럼… 조금 더 참아보세요. 그쪽 대대만 알 수 있도록 구조신호를 보내볼 테니.”
“…크윽, 그러도록 하죠.”
머큐리 사령관과 나는 선실과 함교에서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일반적인 러트사이클인 경우 반나절이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됐다.
탈출포드여도 최소한의 생존물자는 존재하기에 자급자족용 생존키트를 꺼내 보며 식량을 계산했다. 고체로 된 비상식은 두 달 치. 중요한 물은 반년 치가 탑재돼 있다. 사람이 둘이니 아낀다면 둘에서 석 달. 아끼지 않는다면 적당히 한 달 정도 먹을 수 있다.
“설마 한 달이나 걸리겠어.”
이 유역이 공화국 연방의 것이면 쉽게 구조될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시간이 더 걸리고 돈을 좀 쥐여줘야 구조되겠지. 제 목뒤에 채워진 초크를 손으로 스윽 훑었다. 오메가인 내가 멀쩡히 나오려면 쥐여줘야 할 금액은 과연 얼마가 될까. 무법지대의 인간들은 오메가를 탐욕적인 눈으로밖에 보지 않으니까. 아마도 연방화폐 한 다발 정도려나.
“하아…, 돈 아깝게.”
손목에 차고 있던 디바이스에서 삐빅- 하고 알람이 울렸다. 이제 슬슬 머큐리 사령관에게 돌아갈 때다.
“저 왔어요. 사령관, 이제 괜찮으신가요?”
“…….”
함교에서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서둘러 달려가 보니 함교 구석에 머큐리 사령관의 모습이 보였다.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된 헬멧을 보니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손목의 디바이스를 켜 헬스바이저를 체크했다. 심장박동수가 요동을 치고 체온이 높았다. 역시 호르몬 제어가 되지 않는 상태로 노말슈트를 오래 입었으니 몸에 무리가 온 게 틀림이 없다.
“머큐리 사령관! 제 말 들리세요? 머큐리 사령관!”
간헐적인 숨소리만 들려올 뿐 그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응급상황이니 노말슈트 벗기겠습니다!”
목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헬멧을 비틀었다. 푸슉- 공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헬멧이 벗겨졌다. 그러자 그 안을 꽉 채우고 있던 알파의 무거운 페로몬이 빠른 속도로 선내에 흩뿌려졌다.
황급히 손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진하디진한 머큐리 사령관의 페로몬. 평소에는 억제제를 사용해 느끼지 못했는데 이런 향이었구나. 페로몬샘이 있는 목뒤가 화끈거린다.
“큿, 콜록콜록. 이게 무슨….”
“응급상황이었어요. 당신, 정신을 잃었잖아요.”
“아직, 러트… 안 끝났습니다. 헬멧 이리 주세요.”
정말이지 이 사람은 어디까지 꽉 막힌 셈인지. 잔뜩 상기된 모습으로 끙끙대면서 힘든 건 자신이 모조리 짊어지려고 하고. 나를 그곳에서 꺼냈으면서 밀어내려고 하고. 내가 무슨 생각으로 당신과 함께하는 줄도 모르면서. 헬멧이 그에게 닿지 않도록 저 멀리 뒤로 던졌다.
“싫어요. 당신이 말했잖아요. 저보고 더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우라고요.”
“그게 지금 그런 뜻이-”
“그래서 생각했어요. 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요. 당신이란 사람. 처음 만났을 때부터 구해진 이후, 그리고 지금까지 궁금했어요.”
“……예?”
“슬레타 머큐리 사령관. 당신이 자꾸 내 눈에 밟혀요. 그러니 자꾸만 더 알고 싶다고요.”
“저는….”
사령관의 페로몬에 점점 몸이 달아오른다. 애초에 당신이 싫지 않으니 여기까지 쫒아왔다.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 말했는데… 정말 이러기야?”
그 말을 끝으로 머큐리 사령관은 일어섰다. 제 몸을 억제하던 노말슈트를 벗고 잔뜩 흥분한 몸을 제어하며 내 앞에 정중히 무릎을 꿇었다.
“후우… 당신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안 그러면 되지.”
“당신에게는, 그럴 자신이 없어.”
예상치 못한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머큐리 사령관을 바라봤다.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참아내려는 얼굴. 그의 이런 모습이 내 안을 요동치게 만든다.
“후훗, 이래 봬도 조직의 간부였는데 이런 소릴 듣다니. 머큐리 사령관… 날 너무 얕보는 거 아냐?”
그의 떨리는 손을 붙잡아 내 살결을 안게 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그 큰 손에 닿기만 해도 몸 안쪽이 홧홧했다.
“여기 만지고 싶었잖아.”
한 겹만 벗기면 몸이 드러나는 가벼운 차림. 볼록한 윗부분부터 들어간 아래까지 손을 겹쳐 훑어내린다. 여기부터 이 아래까지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 수성의 마녀 슬레타x미오리네 (온천R-18/후타나리 백합)
“미오리네 씨, 여기 강에서 김이 나와요!”
“너무 깊게 숙이지 마. 떨어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강, 고풍스런 전통식 건물, 단풍이 든 붉은 산.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슬레타가 돌린 마을의 경품에 당첨된 것. ‘단풍이 물든 도깨비 온천’이라는 말은 지구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도깨비 온천’이라는 부분이 살짝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말이다.
“다들 축제 분위기로 바쁜가 봐요.”
“여기 지역 축제 이름이 도깨비 온천 축제였던가?”
경품 티켓에 동봉된 가이드 종이를 펼쳤다.
먼 옛날, 한 마을에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목욕을 하러 가던 길에 우연히 거대한 남자와 마주쳤고 씨름을 하게 되었다. 밤새도록 이어진 씨름 끝에 동이 틀 때까지 버텨낸 나무꾼을 본 남자는, 크게 기뻐하며 그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노라 했다. 알고 보니 그 남자의 정체는 도깨비. 나무꾼이 빈 소원은 다름 아닌 따뜻한 물에서 목욕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날 이후 그의 마을에는 온천이 솟아나게 되었다.
마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 이곳의 축제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돼 ‘도깨비 온천 축제’라 불리게 된 모양이다.
“삼백 년이라니, 생각보다 오래된 축제네.”
“삼백 년이나요?! 대단해요! 이런 데를 미오리네 씨랑 같이 오다니… 정말 기뻐요!”
“휴가를 길게 냈으니까, 원하는 만큼 놀다 오자고.”
이번 휴가는 무려 일주일이나 됐다. 슬레타가 회복한 뒤 떠나는 첫 여행이기에, 며칠 동안 철야로 업무를 몰아쳐 마무리했다. 덕분에 이번만큼은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느긋한 여행이 될 터였다.
돌길을 따라 몇 분 걷자, 나무와 기와로 지어진 전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머물 숙소는 여러 개의 프라이빗 온천을 갖춘 여관으로 유명했다. 아직 파르메트의 흉터가 남아 있는 슬레타도, 그리고 세계적으로 얼굴이 알려진 나 역시 공용탕을 이용하기엔 부담이 컸기에, 이곳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미오리네 씨! 저희 방 바깥에 온천이 있어요! 어라? …보통 방에 온천이 딸려 있나요? 제가 봤던 미디어에서는 엄청 큰 온천탕에 원숭이랑 사람 여럿이 들어가 있던데….”
“원숭이…. 애니메이션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법이야.”
원숭이와 함께 온천욕을 하고 싶었던 슬레타의 얼굴에 살짝 실망한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원숭이와 온천욕이라니. 사람의 손길이 닿는 온천이라면 전부 안 된다고 할 테지. 실망한 슬레타를 토닥이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려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
“원숭이가 있으면 우리 둘만의 데이트가 아닌걸.”
“아! …그, 그렇죠.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모처럼 둘이서만 온 거니까요.”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슬레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마을 안으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숙소에서 체력을 빼 버린다면 예정된 일정을 보낼 수 없다. 아쉽지만 후끈한 분위기를 제 손으로 휘저으며 흩트렸다.
“하고 싶은 일 리스트. 여기에 오기 전에 잔뜩 적었었잖아. 게다가 아직 낮이기도 하고.”
“마, 맞아요! 미오리네 씨랑 같이하려고 적었었죠. 마을 스탬프 랠리랑 유자밭 구경. 밤에는 야시장이 열린다고 하더라구요.”
“후후, 기대 많이 했나 보네?”
“물론이죠! 수성이나 아스티카시아에는 온천도 유자나무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면 바로 짐을 맡기고 나가 보자.”
***
축제 준비로 한창인 마을은 활기와 온천의 수증기가 섞여 후끈거렸다.
나무로 된 물길을 따라 온천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연못은 터키색으로 예쁘게 출렁거렸다. 멍하니 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슬레타가 연못을 가리키며 내 이름을 연신 부르고 있었다.
“미오리네 씨! 저기요, 유자가 둥둥 떠 있어요!”
“유자?”
슬레타의 말대로 터키색 물 위로 노란 유자들이 둥둥 떠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수십 개가 떠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디바이스로 확인해 보니, 이곳에서는 강에 유자를 띄워 내년의 운을 기원한다고 한다.
“우리도 가서 해볼까?”
고개를 끄덕이는 슬레타와 함께 나무 물길을 따라 돌길을 올랐다. 흐르는 물 위로 푸른 잎사귀 사이사이 노란 유자들이 동동 떠다니는 모습은 마치 목욕탕의 고무오리처럼 보였다. 물길의 끝에는 작은 웅덩이와 유자로 가득 찬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유자를 물에 흘려보내면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스탬프 랠리 이벤트장이었다.
“유자 냄새가 좋아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은 슬레타가 유자 하나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유자는 생으로는 못 먹고 잼이나 청으로 만들어서 먹는다네?”
“과일인데 생으로는 못 먹나요? 냄새만 보면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슬레타의 중얼거림에 유자를 나눠주던 직원 하나가 싱글벙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러면 한 번 드셔보는 건 어떠세요?”
“먹어봐도 되나요?”
“물론이죠. 바로 뒤쪽에 유자밭이 있어서 신선한 유자를 가져올 수 있답니다.”
그는 노란 유자 껍질을 과도로 손질한 뒤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생으로 먹지 말라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유자를 한입 베어 문 슬레타가 얼굴을 찡그리며 찔끔 눈물을 흘렸다.
“시, 시어요….”
“그렇죠. 유자는 레몬처럼 엄청 신 과일에 속해서 어지간하면 생으로는 잘 먹지 않는답니다.”
“당신, 알고 있었으면서 준 거야?”
째릿하고 인상을 찌푸리자, 직원은 능글맞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우리에게 티켓 두 장을 쥐여주었다.
“이게 저희 이벤트 중 하나여서요. 생 유자를 드시는 분께 유자 따기 티켓을 드리는 이벤트가 따로 있거든요.”
직원의 뒤쪽을 보자 확실히 그런 이벤트 슬로건이 걸려있었다. 유자밭에서 유자 따기. 슬레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슬레타가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미, 미오리네 씨! 저희 여기 가요. 네?”
역시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마냥 기뻐하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티켓을 받아들였다.
늦가을의 유자밭은 올리브색 나무들 사이에 노란 점을 수놓은 듯한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초록색 컨테이너 박스에는 직원들이 미리 따놓은 유자들이 보기 좋게 쌓여 있었고, 다음 공정으로 옮겨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좋은 냄새.”
사방으로 퍼지는 유자 향은 우주에서 맡던 인공 유자 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직원에게 배운 대로 가위를 들고 노란 유자를 하나둘 따 박스에 담았다. 너무 많이 딸 필요는 없고, 유자청을 만들 만큼이면 충분했다.
“저 벌써 이만큼이나 땄어요!”
슬레타는 직접 딴 유자를 뺨에 살짝 갖다 대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해맑게 웃는 건 반칙 아닌가? 배시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저도 모르게 카메라 켜 사진을 찍고 말았다.
“미오리네 씨도 찍어요. 모처럼 데이트잖아요. 저 이것도 하고 싶은 일 리스트예요!”
슬레타의 버킷리스트가 늘어나는 건 나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수십 번의 셔터음이 울린 뒤에야 우리는 다음 코스로 발길을 옮겼다.
“유자돈까스, 유자불고기, 유자덮밥….”
“꼭 유자가 아니어도 된다니까.”
“그치만 여기 특산품인걸요.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요리보다는 베이커리나 차 종류도 있으니까. 오히려 유자라면 그쪽이 메인일걸?”
특산품은 꼭 먹어보고 가야 한다는 슬레타의 말에 디바이스 지도를 켜 음식점을 알아봤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곳이 하나 있었다. 평도 좋고 별점도 높은 대중적인 음식점으로, 슬레타가 기대하던 유자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여기는 어때?”
“파스타집이네요?”
“전에 보니까, 샐러드 파스타 같은 요리를 좋아했잖아. 여기도 유자로 만든 양식 요리가 유명한가 봐.”
“아! 아스티카시아 점심 특선인 ‘토핑듬뿍국수’ 말이죠?”
“어, 그거.”
병원에 있을 때 슬레타가 아스티카시아의 ‘토핑듬뿍국수’가 그립다고 여러 번 말했던 게 떠올랐다. 레시피를 직접 배워 함께 집에서 만들어본 적도 있었지. 맛은 달랐지만 여러모로 즐거운 기억이었다.
가게는 다리와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통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후에도 붐비지 않아 여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내부는 레트로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고, 잔잔한 재즈 음악이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 직원이 메뉴판을 건네주고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오래 걸은 탓에 목이 말라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저기, 추천 메뉴가 따로 있나요?”
“추천 메뉴를 찾으신다면, 이달의 메뉴는 어떠세요? 커플 세트로 가장 잘나가는 메뉴거든요. 유자폰즈를 곁들인 샐러드파스타와 함께 스테이크, 수프와 식전 빵, 에이드가 제공되며, 디저트로는 상큼한 유자셔벗이 나온답니다.”
세트 구성만 봐도 슬레타와 내가 나눠 먹기에 충분해 보였다. 메뉴판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슬레타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이달의 메뉴로 하겠다고 말했다. 주문을 전부 받은 직원이 떠나자, 슬레타가 입을 열었다.
“제가 실수한 건 없겠죠? 이런 곳은 처음이어서….”
“후후, 전혀 없어. 긴장하지 마. 이럴 줄 알았으면 데이트로 더 많은 식당을 다녀볼 걸 그랬나?”
“아, 아니에요! 미오리네 씨 바쁘신걸요.”
“신랑과 데이트인데 시간 정도는 언제든지 낼 수 있어.”
잔뜩 긴장한 슬레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부드럽게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게다가 기대한 건 슬레타 뿐만이 아니거든. 나도 이런 여행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너와 하는 모든 일들이 기다려져.”
“저도! 미오리네 씨와의 여행 기대하고 있어요! 우리 꼭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가요!”
“응, 그런데 목소리는 조금 줄이자….”
“네, 죄송해요.”
“죄송하단 말도 앞으로 금지.”
크게 끄덕이는 슬레타의 손을 장난스럽게 간지럽히고 있자니, 곧 메뉴가 나왔다.
에피타이저로는 먹음직스럽게 썰린 빵과 버터, 그리고 따뜻한 양송이 수프가 나왔다. 빵에 버터를 살짝 발라 한 입 베어 물자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졌다.
그다음으로 유자에이드와 메인 디쉬인 샐러드 파스타, 그리고 미디엄 레어로 구워진 두터운 스테이크가 나왔다. 파스타 위에 뿌려진 소스를 골고루 섞은 뒤 돌돌 말아 각자의 앞접시에 나눠 담고, 스테이크도 큼지막하게 썰어 두 덩이씩 옮겨 주었다.
“이 음료! 빨대가 하트 모양이에요.”
하나의 잔에 하트 모양으로 구부러진 두 빨대를 보고 슬레타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히더니 허둥거렸다.
“이래서 커플 세트구나…. 너 이런 것도 해보고 싶지 않았어?”
“…해보고 싶었어요. 순정 만화 같아서 좋아요….”
“그럼 서로 먹여주기 같은 것도 해야 하나?”
“해, 해보고 싶어요.”
빠르게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 슬레타가 포크를 내 쪽으로 내밀었다. 사람이 적어서 다행이지, 이런 부끄러운 행동 슬레타니까 할 수 있는 거다. 살짝 몸을 기울여 슬레타가 내민 스테이크를 받아먹었다.
“…이번만 해주는 거야.”
“네에….”
귓가가 후끈거린다. 우리는 음식이 식기 전에 서둘러 먹기로 했다.
***
스탬프 랠리를 채우다 보니 어느덧 해가 산허리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해가 지며 거리의 등불이 하나둘씩 켜졌다. 쌀쌀해지자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여관 입구에서 키를 받고 긴 복도를 지나 우리의 방으로 들어섰다. 문 옆에는 ‘머큐리 렘블랑’이라는 성이 종이에 크게 적혀 있었다. 이제 우리는 같은 성씨를 쓰게 되었다.
“이제는 슬레타 머큐리 렘블랑이네?”
“미오리네 씨도 미오리네 머큐리 렘블랑이에요!”
“부부 같아.”
“저희 부부니까요.”
괜한 긴장감이 밀려왔다. 쿵쿵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 안으로 들어서니, 방 한가운데에는 크고 두터운 이불 하나가 깔려 있었다. 부부 동반이라 직원이 미리 깔아둔 모양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슬레타를 흘긋 쳐다보니,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문 앞에서 했던 말을 반복하며 멈칫했다.
“저, 저희는 진짜 부부니까요!”
“아까도 말했잖아!”
“미오리네 씨랑 저랑 정말 결혼해서 같이…!”
“진정해! 누가 뭐라고 그랬어?”
“아, 아뇨. 아무도 안 그랬어요….”
서로 밭은 숨을 내쉬며 가져온 짐을 말없이 내려놓았다. 원래도 같은 집에 살았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야? 수많은 말이 입에 오르내리다가 겨우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된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바보 같아, 우리.”
“아마, 신혼여행 같아서일 거예요…. 제가 아파서 저희 신혼여행도 못 가봤으니까요.”
그랬다. 당시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기에 우선 서류로만 혼인을 올렸었다. 슬레타가 나를 위해 희생했던 수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몸이 회복되면 가장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장 멋진 웨딩홀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었는데.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기댔다.
“첫 데이트 여행이라고 생각해. 신혼여행은 더 크고 좋은 곳으로 데려가 줄게. 모처럼의 여행이니까. 좋은 것만 생각하고 싶어.”
“그럼 저도 좋은 것만 생각할래요.”
드르륵, 슬레타가 방의 가장 끝부분에 있는 미닫이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커다란 통창이 우리를 반겼고, 창 너머로는 나무 바닥과 뜨거운 물이 가득한 노천 온천이 보였다.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놓인 샤워 스툴과 나무로 된 바구니도 눈에 들어왔다.
“저 온천에 들어가고 싶어요. 같이 목욕해요.”
가볍게 타올로 몸을 감싸고 온천실로 들어서자, 뜨거운 김이 후욱- 피부에 달라붙었다. ‘와-’ 하고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니, 슬레타가 손가락으로 온천물을 콕콕 찔러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온도 체크요. 너무 뜨거우면 화상 입을지도 몰라서요.”
“이런 온천은 먼저 씻은 다음에 들어가는 거야.”
“그런 거예요?”
“내가 씻겨줄게. 아직 등 뒤로 손이 잘 안 닿잖아. 이런 건 원래 신부가 해주는 거야.”
“시, 신랑도 해줄 수 있는 거죠?”
“…엉큼하긴.”
그런 뜻이 아닐 거란 걸 알면서도, 장난을 치고 싶은 게 신부의 마음이다. 타올을 꽉 조이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슬레타는 당황한 얼굴로 ‘그, 그런 게 아니에요!’ 하며 양손을 허둥지둥 휘저었다.
“후후, 장난이지. 이리 와. 너도 내 등 밀어줘.”
스툴에 마주 앉아 서로의 몸에 따뜻한 물을 조심스레 뿌렸다. 이렇게 함께 씻는 건 콰이어트 제로 결전 이후로 꽤 드문 일이었다. 그날 이후 슬레타는 파르메트 후유증으로 아프기 시작했고, 우리에겐 이런 여유를 가질 시간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같이 씻는 거 오랜만이지?”
“전 미오리네 씨가 씻겨줬을 때 생각나서 좋은걸요.”
“그건 같이 씻는 게 아니었는걸. 게다가 슬레타, 처음엔 엄청 부끄러워했잖아.”
“그야…, 제 스스럼없는 부분까지 전부 보여지는걸요. 그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아서 지쳐 있었고요….”
“그래도 다 나아서 다행이야.”
슬레타의 젖은 머리칼을 살며시 넘기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 등을 밀어볼까?”
“잘 부탁합니다….”
슬레타의 등에는 파르메트 후유증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붉은 흉터가 남아 있었다. 나에게는 모두를 지켜낸 훈장이나 다름없었지만, 우리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이질적인 상처로 보일지도 몰랐다. 그 생각에 슬레타가 눈물을 보인 적도 있었다.
“정말 예뻐, 슬레타.”
“정말요?”
“너한테는 이제 거짓말 안 해.”
“지난번엔 했으면서….”
“하아? 하얀 거짓말이거든?”
붉은 흉터를 따라 거품을 만들어 부드럽게 등을 쓸어내렸다. 사악사악, 문지를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습이 은근히 귀여웠다. 더운 온천 김을 머금은 슬레타의 짙은 피부는 한층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따뜻한 기운을 받아 더욱 상기된 얼굴에 자꾸만 눈길이 갔다.
“…슬레타, 섰네?”
“…….”
타올 아래로 전해지는 온기와 미묘한 떨림. 작은 움직임에도 숨결이 흔들렸다.
“…으응.”
슬레타의 입에서 새어 나온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타올 너머임에도 분명하게 전해지는 떨림이 있었다.
“이 여행 목표 중 하나가 슬레타의 원기 회복이었는데….”
장난스레 속삭이자, 슬레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젖은 속눈썹 아래로 내려앉은 푸른빛이 더 깊어 보였다.
“…나름 이룬 것 같네?”
온천의 열기 때문만은 아닐,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등에 몸을 맞대자, 슬레타가 가진 열이 내게도 스며드는 것 같았다. 손을 움직일 때마다 더운 숨결이 뺨과 앞머리를 스치듯 닿아 간지럽혔다. 몸을 샤워볼 삼아 문지르면 미처 흘러내리지 못한 거품이 맞닿은 틈새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미, 미오, 리네 씨이…!”
“괜찮아, 그대로….”
“저어, 저. 이제… 흣.”
잔뜩 불거진 살기둥이 성을 내는 것과 달리 슬레타의 몸은 무너지듯 점점 더 아래로 숙였다. 앞의 벽을 겨우 부여잡은 상태로 짜이듯 앞뒤로 흔들리는 자지. 그 끝은 짧은 비음과 긴 절정이었다.
부르르, 몸을 떨며 떨어질락 말락 흔들리는 타올 아래로 끈적하고 진한 정액이 뚝뚝 흘러내렸다. 미끌거리는 기둥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말랑하고 축축이 젖은 끝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살 훑었다.
“이, 이건… 씻는 게 아닌, 데요….”
“씻기 전, 마사지 같은 거야. 원래 뜨거운 물속에 들어가기 전엔 가볍게 몸 풀고 들어가는 거야.”
“그, 그런 건가요? 저 온천은 처음이라 잘 몰랐어요.”
슬레타는 부끄러워하는 듯 양팔로 얼굴을 가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계속 이렇게 둘 수는 없지.
“슬레타, 내 등은 안 밀어줄 거야?”
바닥에 떨어진 샤워볼을 주워 물로 깨끗이 씻고는 다시 거품을 풍성하게 내어 슬레타에게 내밀었다. 슬레타는 샤워볼을 조심스레 받더니, 무언가 생각하듯 빤히 내 얼굴을 바라봤다.
“미오리네 씨도 마사지 할 거죠?”
“으응? 난 아까 너 할 때 대충 했는걸.”
“그, 그게 어떻게 같아요! 저도 등 밀어주면서 마사지 도와줄래요!”
“아니, 괜찮다니- 앗!”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슬레타는 날 품속에 가두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꼬옥 끌어안았다. 닿는 모든 부분이 나와는 다른 볼륨감에 푹 파묻힌다. 한 번 뺏던 자지도 다시금 힘을 되찾은 것인지 엉덩이골을 밀어내며 제 자신을 표출하고 있었다.
장난이 너무 심했던 걸까? 아니, 애초부터 싫었다면 시작도 안 했겠지. 스스로도 괜한 변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뾰로통한 슬레타의 뺨에 살며시 입술을 가져갔다. 부드러운 살결에 입술을 부비며 눈웃음을 짓자, 슬레타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그럼 어디 마음대로 해 봐, 신랑.”
▶ 수성의 마녀 슬레타x미오리네 (동물화x동물화/백합)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거세게 쏟아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사방의 진탕이 폭포와 강을 따라 쏟아져 주변은 순식간에 진흙빛으로 물든다. 그 말인즉, 폭포 뒤편에 마련한 내 보금자리, 이 동굴까지도 영향을 받는다는 소리. 벌써 입구 쪽은 진탕물이 스며들어 어두운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치운다 한들 강이 범람하면 또다시 더러워질 게 뻔했다. 기껏 깨끗하게 치웠는데…. 둥그런 눈썹이 한껏 내려갔지만, 자연재해란 한낱 미물이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진탕이 닿지 않는 동굴 깊숙한 곳으로 길게 뻗은 몸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더 이상 폭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숙한 안쪽에는, 제법 넓은 공동이 하나 자리하고 있다. 원래 이곳에 살던 주인을 쫓아내고 차지한 이 보금자리는 지하수가 솟아나는 작은 지하 호수와 틈마다 은은한 빛을 내는 이끼들이 어우러져 조용하고도 아늑했다.
“여기까지 흙탕물이 넘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긴 꼬리를 적당히 말고는 몸을 축 늘어뜨렸다. 습도가 높은 날엔 이렇게 늘어져 있는 게 차라리 편했다. 그때였다.
쿠웅-! 공동 전체가 울릴 만큼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렇게 큰 소리는 살아오면서 처음이다. 폭포에 벼락이라도 떨어진 걸까? 아니면 거대한 나무가 쓰러진 걸까? 두 갈래로 갈라진 긴 혀를 날름이며 온몸에 난 붉은 비늘을 바싹 세웠다. 이 정도의 굉음이라면 분명 이 근처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리였다.
“…이건 피 냄새?”
눅눅한 공기 사이로 비릿한 혈향이 느껴졌다. 털짐승이라기엔 특유의 털내음이 없었고, 날짐승이라기엔 기름기 어린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맑고 시원한, 청량감마저 감도는 낯선 향이 흘러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본능을 자극하는 그 향에,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쏠렸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자신과 같은 동족일지도 모른다. 알에서 깨어나 성체가 된 이후로 수많은 계절과 풍경이 지나갔지만, 자신과 닮은 존재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쏴아아, 계속된 비 탓에 폭포 밖은 아수라장이었다. 깎여진 절벽에는 긴 상흔이 그어져 있었고, 맑았던 강물은 붉은 기가 섞인 짙은 흙탕물로 변했다. 누가 봐도 싸움의 흔적이었다. 잔뜩 휘갈겨진 흔적들 속에서 피 냄새의 주인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흘러나온 핏자국과 곳곳에 떨어진 비늘만 따라가면 됐으니까.
그렇게 부러진 숲을 헤치며 나아간 곳에는 피를 흘리며 숨을 간신히 내쉬는 네발짐승이 쓰러져 있었다.
“처음 보는 짐승….”
얇고 긴 뱀과 같은 몸에 네발짐승처럼 네 다리를 지닌 요상한 짐승이었다. 머리에는 사슴처럼 길게 뻗은 뿔이 나 있었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흐르듯 이어진 은빛 갈기는 바람에 흩날리며 말의 갈기를 연상케 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짐승은 내가 좇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거였다. 그나마 닮은 점이라곤 길쭉한 몸 하나뿐. 몸을 뒤덮은 비늘의 형태도, 달린 발의 개수도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애초에 나는 뱀이었지, 이런 기묘한 짐승은 아니었다.
“이대로 둔다면 죽을 텐데….”
이미 피를 한참이나 흘렸다. 날씨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대로 이곳에 두면 죽을 게 뻔했고, 사체 냄새를 맡고 다른 놈들이 몰려들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차라리 먹어 치워버리는 게 나을 것도 같았다. 이 정도 크기라면 우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될 터였다.
짐승의 아래로 파고들어 등을 타고 그대로 그 몸을 걸쳐 올렸다. 이만한 크기의 먹잇감을 단숨에 삼키려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노출된 장소보다는 차라리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천천히 먹는 편이 나았기에. 평소보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폭포의 뒤편, 보금자리로 몸을 옮겼다.
“그르릉….”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짐승이 눈을 뜬 건, 보금자리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 정도 상처를 입고도 살아 움직이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여기는… 어디고, 넌… 뭐야. 날 어떻게, 후욱… 할 생각이지? …날 공격한 게 너야?”
“아, 아니요. 그건… 제가 아니고요.”
“날… 삼키려고, 했어….”
“그게… 그러니까.”
먹으려던 건 사실인지라, 변명할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하필 입을 벌린 그 순간 정신이 돌아온 게 화근이었다.
“그, 그쪽이 죽은 줄 알았단 말이에요.”
“…내가?”
그제야 자신의 몸이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흐르는 피와 벗겨진 비늘 틈으로 드러난 상처가 쓰라리지는 않은지, 몸을 더욱 안으로 웅크리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기억, 안 나. 뭐가 뭔지 모르, 겠어.”
“그, 그러면 이렇게 해요! 도와줄게요! 원래는 죽은 줄 알고 먹으려고 했는데 살아있으니까요!”
“…못 믿겠는데. 방심시켜서, 죽일 수도 있잖아.”
“죽을 때까지 안 먹을게요! 공격도 안 할 테니까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 이렇게 심하게 다쳤으니 네발짐승의 행동도 이해가 갔다. 자신 역시 어릴 적엔 수많은 포식자들을 피해 도망치거나 숨죽인 채 몸을 숨겨야 했으니까. 어려울 것도 크게 없다. 산다면 좋은 거고, 죽으면 먹으면 그만인 일이니까.
동족은 아니지만 이 특이한 네발짐승을 곁에 두고 싶었다. 청량하게 스치는 체향도, 자신처럼 유연하게 뻗은 긴 체형도, 물에 비친 반짝이는 은색의 비늘도, 부드럽게 흩어진 갈기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죽기엔 너무 아까운 짐승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 안 나요?”
조심스레 네발짐승에게 기억나는 부분이 있냐고 물었다. 하지만 본능적인 것들을 제외하면, 네발짐승이 알고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어째서 이곳에 상처를 입은 채 떨어졌는지도, 원래 어디에 살았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절벽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흔을 보면 결코 어설픈 다툼 따위는 아니었을 텐데. 그 여파로 이렇게 기억을 잃게 된 것일까?
“읏, 아프다, 니까….”
“아! 얘들은 먹으면 안 돼요. 제가 어릴 때부터 키우는 애들이에요.”
보금자리 한구석, 이끼 위에 놓여 있던 통통한 회복벌레를 물어와 상처 위에 살포시 얹었다. 이렇게 올려두기만 해도 대부분의 상처가 회복되기에 바깥에서 여러 마리를 데려와 이곳에서 기르며 아끼고 있었다.
“이런 조그마한 녀석들이 뭐라고. …상처가 낫겠어?”
“걱정하지 마세요. 나을 거예요.”
“…읏! 됐어, 빨리 저리 가버려!”
네발짐승은 뭐가 그리 싫은지 그르릉 거리며 눈을 세모나게 떴다. 원래도 이렇게 경계심이 많았던 걸까? 이런 상태라면 며칠이 지나도 그리 친해지지 못할 거 같았다.
“기다릴게요!”
다행히 지혈은 된 듯 더 이상의 피는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저렇게 몸을 함부로 움직인다면 아무리 상처를 회복시켜도 다시 벌어질 게 뻔했다. 최소한 벌레들만큼은 얌전히 다뤄줬으면 좋겠는데….
“…아, 미안해. 얘들아.”
삐익, 삐익- 불만을 토로하듯 울어대는 회복벌레들을 조심스레 달래며, 갑작스레 나타난 네발짐승의 경계가 조금이나마 누그러지길 바랐다.
다음 날이 되어도, 또 그다음 날이 되어도 비는 쉴 새 없이 쏟아졌다. 평소보다 거세진 바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방울에 주변의 제일 큰 강이 마침내 범람하기 시작했다. 진흙이 섞인 흙탕물이 둔턱 바로 밑까지 아슬아슬하게 차올랐다. 이대로라면, 겨우 마련한 보금자리가 더럽혀지고 말 테지.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나?
회복벌레들이야 비늘 틈 사이로 숨기면 그만이지만, 이 무지막지한 폭우 속에서 네발짐승을 데리고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갈 거야.”
“이런 몸으로요?”
“여기 잠긴다면서. …남에게 짐 되는 건 더더욱 질색이거든.”
“짐이 된다뇨…!”
“내가 바보인 줄 알아? 뭐가 짐이 아니야, 정말…. 그러고 보니 너, 피신할 곳은 정해놨어?”
새로 몸을 뉘일 곳은 이곳보다 훨씬 높은 언덕에 자리한 바위 동굴이었다. 원래 이곳에 머물기 전, 후보지로 고민했던 곳이지만 영역 안을 지나는 짐승들이 많아 결국 포기했던 곳이다. 마침 지금 같은 날씨엔 돌아다닐 녀석들도 드물고, 주변에 범람할 강도 없으니 임시 보금자리로 삼기에 괜찮았다.
“괜찮아요. 혹시 모르니 제가 먼저 가서 확인해볼게요.”
그렇게 기세 좋게 말은 해놨지만, 워낙 좋은 위치라 누군가 먼저 둥지를 틀고 있을까 조금 걱정이었다. 나쁜 예감은 딱 들어맞는다고 하던가. 걱정한 대로 예비 보금자리는 이미 하늘을 나는 커다란 새 떼가 차지하고 있었다. 녀석들이 여럿 달라붙어 동굴 입구를 막고 있어 들어갈 틈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기….”
입을 떼자마자, 수많은 부리들이 딱딱거리며 불쾌한 위협음을 내기 시작했다.
“까악-! 까악-! 나가라! 나가라! 뱀! 잡아먹힌다! 우리 둥지에서 꺼져라!”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소음. 이제는 배설물까지 마구 뿌려댔다. 이 정도 무리라면 힘을 써서 쫓아낼 수도 있겠지만, 싸움 끝에 엉망이 된 보금자리를 다시 고치는 데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이놈들은 지저분하게 사는 습성이 있어, 그런 수고는 더더욱 아깝게 느껴졌다.
불만스러움에 두터운 꼬리를 한 번 휘두르고는,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몸을 움직였다. 두 번째로 향한 곳은 거대한 나무의 옹이구멍.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너무 깊이 빠졌던 일이 있어 그 뒤로는 찾지 않았던 곳이었다.
“분명 엄청나게 큰 구멍이었지…?”
수해(樹海) 중심부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 안에는 보통 여러 생물이 함께 살았다. 옹이구멍은 나무 안으로 들어서는 출입구나 마찬가지인데 이번에 찾은 옹이구멍은 전 주인이 죽은 뒤 뼈만 남겨진 버려진 보금자리였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몸집도 커졌으니 이곳저곳 뚫려있는 구멍에 빠져 길을 잃을 일도 없었다. 보금자리 안쪽에는 예전에 본 것 그대로 앙상한 뼈가 고요히 남아 있었다.
“전처럼 아무도 없어. 안쪽은 꽤 넓고, 지금이라면 원래 보금자리보다도 좋을지도….”
상당히 위쪽에 자리 잡아 침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뼈는 밖으로 치워버리면 되고, 벌레들이 먹을 이끼는 원래 보금자리에서 조금씩 뜯어오면 그만이었다.
“헉… 헉, 너무 멀어.”
“…그게 원래 생각했던 곳은 이미 주인이 있어서요.”
이제는 익숙해질 정도로 퍼붓는 비를 헤치고 새로운 지역으로 조심스레 들어섰다. 원래 머물던 곳과는 달리, 이곳엔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다양한 식물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탓에 구조가 무척 복잡해 보금자리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다.
“이렇게 큰 나무들은 처음 봐.”
“기억을 잃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수도. …네발짐승 씨 말이에요.”
“아냐…, 그런 느낌은 아닌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던 네발짐승은 무언가 거슬렸는지 짜증 어린 얼굴로 이쪽을 바라봤다.
“…그나저나 너! 그 이상한 호칭은 뭐야?”
“호칭이요? 애초에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잖아요?!”
“하아? 네발짐승이 뭐냐고? 장난해? 너도 그러면 기어 다니는 짐승이야?”
“…네에?! 저, 저는 슬레타인데요!”
“나도 네발짐승이 아니라 미오리네인데!”
분명 저번에 물어봤을 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지금에서야 떠올리다니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저번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면서요!”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기억나.”
시치미를 떼며 아무렇지도 않게 구는 미오리네 씨의 태도에, 괜스레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래서였을까? 그 살랑거리던 꼬리를 덥석 물어버린 게.
“…너! 나 안 먹는다면서!”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면서요. …저, 저도 생각이 바뀔 수 있는 거죠!”
미오리네 씨의 체구와 내 체구를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우위에 놓인 건 바로 나였다. 파르르 떨리는 꼬리를 천천히 입안으로 밀어 넣고, 갈라진 혀로 살짝살짝 핥자, 미오리네 씨는 눈을 꼭 감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나, 맛없으니까…. 먹지 마….”
그 순간, 쿵-하고 가슴을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감각이 밀려왔다. 처음 겪는 기이한 감각에 미오리네 씨를 급히 뱉어내고는, 놀란 채로 몸을 빙빙 꼬며 가슴 부위를 훑었다. 상처는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 장난이에요. 안, 할 테니까요…. 그, 그러니까 미오리네 씨도, 자꾸 그러지 마세요!”
“…알았으니까.”
몸을 추스른 뒤에도, 우리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조금만 닿았을 뿐인데도 맛있다고 느꼈다. 상처 때문이었을까?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
“이번에 자리를 잡으면 제대로 된 걸 잡아 올게요.”
“…물고기 말고, 많이 먹어서 질렸으니까.”
“네!”
이 지역은 바위만큼 커다란 새들과 거대한 짐승들이 여럿 살고 있어, 미오리네 씨가 원하는 사냥감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특히 우기에는 사냥감들이 몸을 피하려 특정 장소에 모이는 습성이 있어 더욱 그랬다.
“슬레타, 너 말이야. 왜 나를 데려올 생각을 한 거야?”
“가, 갑자기요?”
“아무 말 없이 계속 걷는 것도 좀 그래서. 분위기 전환도 할 겸.”
먹으려고 데려왔다고 하긴 좀 그렇지 않나? 아니, 그 얘긴 이미 한 번 했었는데 어쩌지? 결국 고심 끝에 미오리네 씨가 기분 상하지 않을 말을 골라 조심스레 내뱉었다.
“처음에는 도, 동족인 줄 알아서요. …아니었지만요.”
“동족 말이야?”
“저는 미오리네 씨처럼 다리도 없고, 뿔도 없고, 이빨도 다르고….”
미오리네 씨는 내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슥 훑어보더니, 미묘하단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그야, 너 이무기잖아. 완전 동족이 아니라고 하긴 어렵지.”
“…이무기요? 이무기가 뭐예요?”
“너 스스로도 잘 몰라?”
“이곳에 계속 혼자 있어서요…. 미오리네 씨 같은 짐승도 처음이에요.”
미오리네 씨는 무언가 떠올리려는 듯 머리를 싸매더니, 애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무기는 용의 전 단계 중 하나로, 상당한 양의 기운을 머금고 여의주를 만들면 용이 된다고 했다. 용은 대체로 용으로 태어나 용으로 죽지만, 아주 희귀한 확률로 뱀에서 이무기로, 이무기에서 용으로 변하는 개체도 몇 백 년에 한 번 정도 나타난다고 했다.
“나도 풍문으로만 들었던 이야기여서 잘은 모르겠지만, 너는 꽤 기운을 모았는데도 용으로 변하지 않았다니, 이상하네.”
“미오리네 씨도 여의주가 있어요?”
“…아니, 지금은 없어. …기억과 함께 여의주를, 잃어버렸거든.”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게 정말이었던 거예요?”
“그럼, 거짓말인 줄 알았어…?”
“너무 잘 알고 있길래요. 거짓말인 줄….”
여의주를 가진 이무기는 용이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여의주를 잃은 용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 미오리네 씨는, 그 여의주라는 걸 되찾아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는 게 목표인가요?”
“…글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거든.”
“그게 무슨?”
느리지만 열심히 쫓아오던 미오리네 씨의 움직임이 점점 둔해지더니, 이내 얼어붙은 듯 한 곳에 멈춰 섰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제대로 떼지 못하고 덜덜 떠는 모습을 보며, 나는 미오리네 씨의 몸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미오리네 씨! 미오리네 씨! 괜찮으세요? 정신 차리세요!”
“추워…, 배고파….”
서둘러 미오리네 씨를 등에 태우고 새 보금자리로 빠르게 향했다. 미오리네 씨의 몸이 이렇게 빨리 식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처음부터 등에 태우고 갔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너무나도 안이했다.
“헉, 헉… 몸이 차가워. 뭔가 데울 만한 것이…!”
차가워진 몸을 데워야 하는데, 하필 주변에 마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비가 온 지도 벌써 며칠째니 없는 게 당연했다. 급한 마음에 미오리네 씨를 칭칭 감아보았다. 내 몸은 뱀치고 따뜻한 몸이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동안 움직이지 않은 채 미오리네 씨를 꼭 껴안고 있었다.
“…헉, 숨 막혀…!”
“미, 미오리네 씨?! 정신이 드셨어요?”
“정신…? 여기는 어디?”
“이번에 새로 옮긴 보금자리예요. 도중에 미오리네 씨가 쓰러져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이제부터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절대 밖에 나가시면 안 돼요!”
“그렇게까지 과보호할 필요는…. 뭐야, 네가 몸을 데워준 거야?”
“그야, 미오리네 씨. 몸이 얼음장 같았으니까요.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요….”
긴장이 풀린 건지 몸이 추욱 늘어지자, 무게 때문에 불편한지 자꾸만 품속에서 꿈틀거렸다. 미오리네 씨의 네 다리가 비늘끼리 맞닿은 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오더니, 발톱으로 붉은 비늘을 벅벅 긁으며 자꾸만 빠져나가려고 했다.
“…슬레타, 무겁다니까. 나 아직 환자야.”
“조금만 더요. 회복벌레 얹어드릴게요….”
비늘 틈 사이로 회복벌레들이 포르르 날아와, 우리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포슬포슬한 솜털 같은 포자털이 주변으로 흩뿌려진다. 이렇게 우리 모두가 몸을 맞대고 있으니 따끈하고 제법 가족처럼 느껴졌다.
“…있잖아, 너는 여기에 얼마나 살았어?”
미오리네 씨의 갑작스런 질문에 눈을 댕그랗게 굴리며, 다사다난했던 유생 때부터 영역의 주인이 된 지금까지 속으로 셈해봤다.
“저, 저 말인가요? 전 여기서 나고 자랐어요. 계절도 벌써 삼십 번도 넘게 지났을 걸요?”
“삼십 번이라…, 그러면 나도 그렇게 되려나….”
그 말에는 약간의 체념이 묻어 있었다. 마치 이 생활을 조용히 받아들이려는 이처럼 말이다.